살인적인 레이스가 끝났다. 엿새 동안 7종목에서 3300m를 역영하며 은메달 1개, 동메달 5개를 따냈다. 모두가 그에게 영웅이라 했다. 그는 ‘마린보이’ 박태환(25)이다.
영웅의 도전은 2006년 도하에서 시작됐다. 당시 열일곱 소년이던 박태환은 자유형 200m와 400m, 1500m 금메달을 포함해 7개의 메달을 목에 걸었고, 4년 뒤 광저우 대회에서는 자유형 100m와 200m, 400m 금메달 등 7개의 메달을 획득하며 자신의 수영 인생에 정점을 찍었다.
그리고 2014 인천아시안게임에서 누구도 오르지 못한 산을 넘었다. 비록 금메달은 없었지만 6개의 메달을 더해 아시안게임 개인 통산 20개의 메달을 거머쥐었다. 신기록이다. 한국 스포츠사에 다시는 없을 위대한 업적이다. 아니 다시는 없어야할 기록일수도 있다.
박태환의 위대한 기록 뒤에는 한국 수영의 암울한 현실이 자리하기 때문이다. 메달 갈증에 허덕이던 한국 수영에 박태환의 등장은 큰 축복이었다. 그러나 박태환에 대한 지나친 기대와 의존은 1978년 방콕 대회 이후 36년 만의 ‘노골드’라는 뼈아픈 결과를 낳았다.
오로지 박태환만 믿고 있던 한국 수영이다. 그동안 한국 수영에는 많은 영웅이 있었다. 1970년대 수영 영웅 고(故) 조오련과 ‘아시아의 인어’ 최윤희 등 불세출 영웅들의 활약으로 근근이 ‘금맥’은 이어갈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박태환은 으뜸이었다. 아시안게임를 넘어 올림픽까지 제패하며 한국 수영에 다시는 없을 기쁨을 안겼다.
하지만 한국 수영은 박태환이 전성기를 누려온 10년 동안 그 어떤 대책도 마련하지 못했다. 신체적으로 우리보다 나을 게 없는 일본은 정부의 적극적 지원과 과학적 분석을 통해 개개인의 강점을 극한까지 끌어올렸다. 그 결과 평영ㆍ배영ㆍ개인혼영 등 다양한 경영 종목에서 강세를 나타내기 시작했다. 올림픽 통산 4개의 금메달을 목에 건 기타지마 고스케(32)는 신장이 178㎝, 이번 대회 5개의 금메달을 휩쓴 하기노 고스케(20)는 175㎝에 불과했다. 더 이상 ‘신체적 한계 때문’이라는 말은 통하지 않는 시대다.
올해 초에는 ‘피겨 여왕’ 김연아(24)가 빙판 위를 떠났다. 그러나 김연아가 한국 피겨를 이끌어온 10년 동안 아무런 대안도 마련하지 못한 채 한국 피겨는 또 다시 김연아 이전으로 되돌아갔다. 마치 꿈을 꾼 것처럼 말이다.
한 명의 유망주에게 온갖 기대와 관심을 집중시키는 엘리트스포츠의 씁쓸한 이면이다. 우리는 그들을 향해 영웅이라 부르지만 어쩌면 국민의 기대와 욕구를 충족시켜야 하는 노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든다.
박태환 이후의 대안은 진정 ‘제2의 박태환’뿐일까. 마치 노예처럼 아무렇지 않게 20개의 메달을 안겨줄 그런 영웅이 다시 나타날까. 박태환이 따낸 20개의 메달 이면에는 개인의 땀과 노력, 열정이 고스란이 녹아 있어 아름답고 위대하다. 그러나 또 다른 이면에는 한국 수영의 암담한 현실이 자리하고 있다.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는 우리 시대의 우울한 자화상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