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림사건 무죄확정으로 본 ‘변호인’의 힘 [최두선의 나비효과]

입력 2014-09-29 0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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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변호인' 스틸컷(사진 = NEW)

‘영화는 킬링타임(Killing time)’이란 말이 있다. 단순히 여유 시간을 투자해 즐기기 위한 오락적 요소에 지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흥행의 바로미터는 그 영화가 얼마나 재미있느냐 하는 점에 있었다.

특히 한국영화는 더욱 그랬다. 과거 ‘스크린쿼터 제도’에 목매던 시절, 한국영화에 대한 기대치는 많이 낮았다. “난 한국영화는 안 봐”라는 말은 지금의 40~50대 관객들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말이다. 한국영화가 작품을 통해 어떤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기엔 영화에 몰입하고 공감할 수 있는 구조적 장치가 부족했다. 당장의 먹고 살 일을 걱정해야 하는 한국영화로서는 관객의 머리 위에서 비판적 메시지를 전할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 해 1억 관객을 확보한 한국영화는 단순한 숫자를 넘어 사회 비판적 메시지를 능수능란하게 담을 수 있다는 점에서 진정한 르네상스 시대를 열었다고 할 수 있다. 현 시대처럼 사회적 메시지를 강하게 담고, 그 영향력이 가시적으로 나타난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25일 대법원 무죄판결을 확정 받은 부림사건 피해자들의 모습이 올 초 1000만 영화를 돌파하며 흥행에 성공한 영화 ‘변호인’을 떠올리게 한다. ‘변호인’은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일생을 담아 화제를 모았지만 본질은 80년대 야만적이며 비상식적 정치를 꼬집고, 현 시대 잔존하는 기득권층의 이기주의와 부정부패, 그에 편승하고 굴복한 사회의 단면을 부각시키는데 있었다.

부림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무죄판결이 ‘변호인’때문이라고 단정 짓기엔 무리가 있으나 ‘변호인’이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이후(지난 2월) 부산지법 재심에서 무죄판결을 내렸다는 점과 33년 만에 확정된 선고라는 점에서 대중은 이번 무죄확정과 영화 ‘변호인’을 밀접하게 연관시키고 있다.

▲영화 '명량' 스틸컷(사진 = CJ엔터테인먼트)

이처럼 ‘변호인’이란 영화의 흥행은 한 문화적 콘텐츠의 성공을 넘어 우리 사회에 직접적 영향을 미쳤다. 대중문화의 사회 풍자는 문화가 담당한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로 부조리를 가장 빠르게 대중에 인식시키고, 광범위한 공감대를 얻는데 효과적이다.

과거 수많은 명곡, 명작들이 심의, 규제에 걸려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도 이런 파급력을 우려한 당국의 지나친 우려에 의한 것이었음은 이미 밝혀진 사실이다. 소설과 영화는 사회윤리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삭제됐고, 불신풍조나 퇴폐를 조장한다는 이유로 금지곡으로 묶인 대중가요는 민주정부 수립 이전까지 840여 곡에 이르렀다. 이제는 문화 콘텐츠에 대한 ‘자유’가 확보된 것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형평성에 어긋난 불공정한 심의로 인해 불이익을 받는 현상들이 비일비재하다.

사회 안정과 사회 비판의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져 있는 문화 콘텐츠를 대하는 대중이 택해야 할 자세는 무엇일까. ‘변호인’에 이어 17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일대 파란을 일으킨 영화 ‘명량’에서 그 해답을 찾아볼 수 있다. ‘명량’은 영화 자체의 메시지 전개, CG 등 연출력으로 흥행에 성공했다기보다 사회적 메시지에서 그 요인을 찾는 것이 더 분명하다. 세월호 참사로 드러난 소통의 부재, 교황 내한으로 부각된 리더십 실종 등에 대한 대중의 목마름이 ‘명량’에 집중돼 나타난 결과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변호인’의 흥행과 ‘명량’의 흥행에서 더 나은 사회를 바라기 위한 대중의 욕구를 읽을 수 있다. 과거 데모의 형태로 나타난 국민적 요구를 투영하고 관철하기 위한 움직임이 문화에 스며들어 조용하지만 진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사회는 철저한 자기반성, 신랄한 비판, 살신성인의 희생을 통해 발전한다. 우리 역사는 이를 잔인하게 경험해왔다. 사회 발전은 현재진행형이다. 앞으로도 비상식과 싸우는 국민 정서는 뜨겁게 솟구칠 것이다. 그 가운데에 영화라는 콘텐츠가 한몫 단단히 해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 ‘1000만 관객’은 영화가 말하는 바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암묵적 힘이다. 공허하게 떠도는 억울한 누명도, 정치권력에 의해 짓밟힌 소수의 발언도, 무관심 속에 방치된 사회 약자의 아픔도, 영화를 통해 국민적 관심을 얻을 수 있다. 5000만 인구에서 1700만명이 한 영화를 보고 있는 우리 영화시장은 가장 효과적인 '아고라'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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