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에 다리가 놓이고 영동 개발이 이뤄지기 전인 1960년대까지만 해도 삼성동 일대는 서울 사대문 안에서 가려면 마포나 뚝섬에서 배를 타고 가서도 한참을 걸어야 닿을 수 있었다. 특히 한전부지 일대는 조선시대에 승과 고시를 치르던 승과평(僧科坪)으로 많은 고승을 배출한 불교계의 성지 같은 곳이었다.
이 과정에서 당시 조계종 중앙신도회장을 맡고 있던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막후에서 상당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1969년 조계종 중앙종회에서 봉은사 토지 매각이 결의되면서 종단 내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봉은사 주지 서운 스님 등은 매각을 강하게 반대했고 법정 스님 같은 인사들도 문제를 제기했다
법정 스님은 "불교회관 건립 문제는 급히 서두를 게 아니고 시간적 여유와 자체의 역량을 살펴가면서 널리 종단의 여론을 들어 일을 추진해야 한다. 봉은사 같은 중요 도량의 처분 문제는 적지 않은 일이므로 불자들 다수의 의견이 집약돼 역사적인 과오를 초래하는 일이 없어야겠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종단은 이듬해인 1970년 1월 매각을 결정했고 그해 6월 문공부는 봉은사 소유 부동산 매각을 허가했다. 이에 발맞추듯 8월 강남 영동권역 개발의 신호탄이 되는 영동대교 착공식이 열렸다. 이후 10월 종단은 5억3000만원(평당 5300원)을 받고 10만평을 한국전력주식회사·대한석탄공사·대한광업진흥공사 등 상공부 산하 기관에 팔았다.
1984년 서울 삼성동 167번지 토지는 한전의 소유가 됐고, 1987년 이 토지에 22층짜리 한전 본사 건물이 들어섰다. 그리고 18일 현대차그룹은 1970년 봉은사가 매각한 3.3㎡당 5300원의 8만2500배가 넘는 3.3㎡당 4억3879만원에 이 토지를 낙찰받았다.
조계종 관계자는 "불교 역사에서 의미 있는 곳이 헐값에 정부에 넘어갔다가 다시 천문학적인 금액에 팔리는 걸 보니 만감이 교차한다. 씁쓸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