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금융위기가 발생한 지 6년이 된 지금, 우리와 주요국의 대응은 너무나 다르다. 미국은 사이렌까지 울리며 ‘졸면 죽는다’는 경각심을 고취시키고 있는 반면 한국은 이상 신호에도 대비는커녕 괜찮을 것이란 속절없는 낙관에 기대고 있다.
최근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금융안정위원회를 신설했다. 6년여에 걸친 양적완화 정책에 따른 자산 거품 형성을 감시해 2차 위기를 막겠다는 취지다. 영국도 비슷한 위원회를 이미 가동 중이다.
위원회는 스탠리 피셔 부의장이 이끈다. 요즘 세계경제를 주도한다는 MIT 학파의 좌장격이다. 벤 버냉키 전 연준 의장과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 총재의 지도교수였다. 그는 위기관리 전문가이기도 하다. 아시아 외환위기 당시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부총재로, 한국과 동남아는 물론 멕시코, 브라질에 대한 구제금융을 주도했다. 이스라엘 중앙은행 총재로 일하던 지난 2008년 전 세계 중앙은행 가운데 가장 먼저 금리를 내렸고, 이듬해에는 경기회복을 확신하고 가장 먼저 금리를 올렸다. 부동산 시장 과열이 거품으로 확산되는 것을 차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피셔 부의장은 지난달 ‘계속되는 대침체(Great Recession: moving ahead)’란 제목으로 연설을 했다. 1930년대 미국의 대공황(Great Depression)에 대비해 현재의 경기 상황을 대침체라고 표현하며 위기를 강조한 것이다. 그는 “다음 번 위기에 항상 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새로운 위기는 이전과 다를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리는 어떤가. 뇌관 1순위 후보라고 할 수 있는 가계부채를 보자. 기준금리를 인하한 데 이어 주택담보대출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등 부동산 관련 금융규제도 완화했다. 은행 돈을 더 싸게 빌려 줄 테니 빚을 더 많이 내서 집을 사라는 격이다. 이 바람에 8월 한달간 금융권 주택담보대출이 올해 월평균 증가액의 3배 이상으로 급증했다.
이상 신호에도 정부는 뒷짐이다. 연체율이 낮고 담보 능력이 있는 중산층 대출자가 주력이어서 여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연초 가계부채 증가세를 우려하던 당국의 목소리도 최경환호 출범 이후 온데간데없다.
금리를 추가로 인하하라는 압박까지 커지고 있다. 가채부채의 증가세가 더 가팔라질 수 있다는 의미다. 반면 6년 전 세계 금융위기의 충격파를 흡수해 줬던 LTV와 DTI의 방어능력은 약화됐고, 당국은 낙관론으로 돌변했다. 위기 시 가계부채란 핵폭탄에 보다 강한 충격이 그대로 가해질 수 있다는 의미다. 생각만 해도 섬뜩하다.
가계부채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크게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부동산 거래가 활성화되면서 가격이 올라 부채를 털 수 있는 것과 소득이 팍팍 늘어 빚을 순조롭게 줄여 나가는 쪽이다. 양대 해결축이 꼬리에 꼬리를 물 듯 선순환해주면 정말 짱이다. 여기에 고율의 악성 부채가 저리의 양질로 체질이 개선되면서 시간까지 벌어주면 더욱 좋다. 정부도 이런 그림을 염두에 두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문제는 가계부채를 날려버릴 선순환 선풍기를 돌리기가 무척 힘들다는 점이다. 안타깝지만 반대의 상황도 상정해야 하는 이유다. 최악은 세계 경제가 피셔 부의장의 우려처럼 대침체의 수렁에 빨려들면서 소득과 부동산이 함께 쪼그라드는 것이다. 여기에 연준이 금리까지 올린다면 위기 바이러스가 다시 창궐할 것이다.
최근 부동산 경기가 살아나고 있다. 가뭄에 단비 같다. 그러나 경기활성화를 불러올 마중물이 될지, 가계부채만 악화시키는 독약이 될진 아직 모른다. 여기에 경제활성화 법안의 키를 쥐고 있는 국회가 세월호 정국에 꽉꽉 막힌 터라 더욱 불안하다.
빚보다 더 위태로운 것은 그 위험성조차 느끼지 못하는 오만한 불감증일 것이다. 대비 없이 위기를 맞으면 화는 더욱 커지기 마련이다. 가계부채에 대한 범정부 차원의 노력을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