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CSR는 책임과 의무를 앞세우기에 기업들로선 불편한 구석이 참 많다. 더욱이 외부의 책임 강요에 시달리다 보면 불만이 쌓이고 저항한다. 최근 CSR를 법제화하려는 정치권의 다양한 움직임에 맞서 ‘기업 자율’을 강조하는 게 대표적인 사례다. ‘기업이 스스로 할 테니 강제적 수단을 쓰진 말아 달라’는 의미다.
지속가능성이란 용어를 활용하면 느낌이 달라진다. 기업이 지속가능하다는 건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지구를 지속가능하게 해주는 것은 물론, 치열한 시장경쟁에서 살아남는다는 의미도 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글로벌시장에서 지속적으로 살아남는다는 건 기업들에 희망적 메시지이기도 하다. 지속가능 경영이 ‘사회적 책임’보다 환영받는 이유다. 기업이 지속가능하면 그 과실은 기업의 수많은 이해관계자들이 나눠 갖게 된다. 이해관계자로는 기업에서 일하는 직원들과 주주들이 첫손에 꼽힌다. 수많은 협력업체들, 기업이 뿌리내리고 있는 지역사회도 기업과 이해관계로 얽혀 있다. 기업이 제공하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향유하는 소비자들도 빼놓을 수 없다. 기업은 이들 이해관계자들에게 자신의 성과를 과시할 때 우선 재무제표를 보여준다. CSR에 일찍 눈뜬 상당수 기업들은 CSR 연례보고서로 이해관계자들에게 화답한다.
그리고 이해관계자들은 지속가능 경영의 결실을 숫자로 확인하고 싶어한다. 그 기업에 투자해 과실을 나눠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지속가능성이 높은 기업, 그래서 생존경쟁을 뚫고 나갈 기업이 확실하다면 투자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런데 어떤 기업이 지속가능 경영을 잘하고 있는지 알 길이 없다. 특히 주식투자자들은 증시에 상장된 기업 가운데 어느 기업이 일상적 영업활동뿐 아니라 지속가능 경영에 탁월한 성과를 내고 있는지 궁금하지만 정보가 턱없이 부족하다.
이런 현상은 미국도 예외가 아닌 모양이다. 지속가능 경영이 기업과 주주들에게 재무적 혜택을 가져다 준다는데 왜 월스트리트의 기관투자자들은 주목하지 않을까? 이게 언론이나 연구기관들의 주된 관심사다. 맥킨지앤컴퍼니가 최근 내놓은 연구 결과를 요약해 보면 이렇다. “투자자들은 지속가능 경영과 주주가치를 증명할 만한 정보를 갖고 있지 않다. 기업들은 이 관계의 명확성을 월스트리트에 증명하지 못하고 있다. 수십조 달러의 움직임이 방해받고 있다.”
환경 파괴 없는 지속가능성을 위해 미국의 투자기금, 환경단체, 민간그룹들이 결성한 비영리 연합체 세리스(Ceres)의 ‘기후변화 투자네트워크 프로젝트’에는 11조 달러의 자산이 투자돼 있다. 글로벌 회계법인 EY의 최근 설문조사 결과를 봐도 기관투자자의 90%는 지속가능 경영의 핵심인 사회적, 환경적, 지배구조적 요소(ESG), 즉 비재무적 성과를 투자의사결정의 핵심요소로 고려한다. 그러나 또 다른 글로벌 회계법인인 PwC가 밝혔듯 투자자들은 기업이 제공하는 지속가능성 관련 정보에 만족하지 못한다.
기업들은 지속가능 경영의 재무적 장점들을 명확히 보여주고 공유할 필요가 있다. GRI(Global Reporting Initiative)처럼 지속가능 경영 보고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전문기관들을 활용할 수 있지만 말 그대로 CSR 연례보고서 작성에 활용할 수 있을 뿐 투자자들이 만족할 정보를 제공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투자자나 핵심 이해관계자들을 설득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설득의 핵심은 기업이 자신의 지속가능성 노력을 얼마나 구체적으로, 성실하게 이해관계자들에게 전달하느냐다. 그 수단을 고민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