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기업의 설비투자 증대 정책으로 아베노믹스를 참고해야 한다는 발상에는 설득력이 좀 떨어진다. 아베 정권은 2013년 6월 책정한 ‘제3의 화살’인 성장전략에서 향후 3년간을 ‘집중투자촉진기간’으로 설정하고, 세제·예산·금융·규제개혁·제도정비 등의 시책을 총동원해 설비투자를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 수준인 연간 70조 엔, 약 10% 증가시킨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그러나 1여년이 지난 최근 일본 기업의 설비투자는 미미한 증가에 그치고 있다. 일본 기업의 설비투자는 2013년까지 1∼2%대의 증가에 머물다가, 2014년 1분기에 겨우 7.4% 증가하는 데 그치고 있다. 같은 기간 엔저 등으로 기업의 영업이익률이 20%대를 상회하고 있음에도 말이다.
그렇다면 일본 기업들은 300조 엔이 넘는 사내유보를 보유하고 있고, 호경기임에도 불구하고 왜 투자에 대해 신중한 자세를 견지하고 있는 것일까? 그 이유는 첫째, 일본 기업 경영자에게는 과거 버블기의 과잉투자·과잉채무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 버블기의 과잉투자로 인해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에 설비 노후화가 진행돼 10년 이상 된 설비가 약 60%, 20년 이상이 약 30%임에도 불구하고 일본 기업들은 설비의 유지·보수 수준인 감가상각비에도 못 미치는 투자에 머무르고 있다. IMF 외환위기 때의 트라우마가 작용하는 것은 우리 기업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둘째는 기대성장률이 낮기 때문이다. 일본 기업 경영자들은 소자·고령화 등으로 향후에도 국내 수요가 늘어날 것을 기대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셋째, 이와 관련해 일본 내보다는 수요가 급성장하는 아시아 등 해외에 투자하기 때문이다.
1990년대 10% 정도에 불과하던 해외투자 비중이 2012년에는 25%를 넘어섰다. 이는 일본 기업들의 장기 주식 보유가 증가하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따라서 아베노믹스와 설비투자 증가와의 관계는 아직 불투명한 상황이다. 때문에 아베 정권은 최근 법인세를 10% 정도 인하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투자 수요가 불분명한 상황에서 법인세를 인하해도 효과는 그다지 크지 않을 것이란 목소리가 높다. 참고로 우리 기업과 일본 기업이 투자하지 않는 이유에는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일본은 당근으로, 한국은 채찍으로 투자를 늘리겠다는 점에서 양국은 서로 달라 보인다.
그렇다고 아베노믹스가 우리 경제에 주는 시사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최근 미미하나마 투자가 증가하는 것은 20조 엔에 달하는 아베노믹스의 재정투입 정책이 투자 증가에 효과를 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투자 증가 업종을 보면 주로 부동산업·건설업·유통업 등 비제조업 분야다. 일본 경제의 서비스산업화에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2012년 설비투자의 산업별 내역을 보면 제조업이 36%, 비제조업이 64%다. 따라서 경기부양 정책은 비제조업 투자 증대에 기여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따라서 아베노믹스는 재정정책으로 ‘피부에 와 닿는’ 효과를 보고 있는 것이다. 회복 기미를 보이던 우리 경제가 세월호 참사로 주저앉은 상황을 감안하면 재정정책은 비제조업 중심으로 투자를 늘릴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주의할 점은 일본이 잃어버린 20년 동안 재정정책에만 의존하다 경제도 회생시키지 못하면서 재정적자만 확대시켰다는 점이다. 따라서 재정정책은 한시적 불쏘시개로 활용해야 한다.
그렇다면 한국이든 일본이든 생산성을 향상시킬 질 좋은 투자를 늘리는 방법은 무엇일까? 결론은 일과성으로 투자에 대해 당근이나 채찍을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 사업 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인재 등의 경영자원이 쇠퇴산업에서 성장산업으로 이전하기 쉽도록 노동력 이동에 관한 각종 규제완화·제도정비를 추진하는 것이다. 이러한 대책은 국내 기업의 투자활성화 뿐만 아니라 해외로 진출한 기업을 U턴시키거나 해외기업의 한국 투자까지도 활성화시키는 대책임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