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와 부패가 한국경제의 발목을 단단히 움켜쥐고 있다. 정부가 특히 연초부터 규제개선과 부정부패의 엄단을 천명하고 나섰지만 우리 경제에 뿌리박힌 관행이 이를 막아선 모양새다.
실제로 ‘천송이 코트’는 규제가 한국경제의 발목을 어떻게 잡을 수 있는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지난 3월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열린 규제개혁점검회의에서는 액티브X 탓에 외국인들이 인기절정의 한류상품인 천송이코트(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서 주연배우 전지현씨가 입었던 코트)를 국내 쇼핑몰에서 살 수 없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는 외국인이 사용할 수 없는 공인인증서 문제에서 파생된 것이다. 특히 액티브X는 공인인증서에 가장 많이 활용되는 플러그인이라는 점 때문에 지탄을 받았다.
실제로 액티브X는 마이크로소프트(MS)의 인터넷 익스플로러(IE)에서 본인 확인·결제 등을 위해 컴퓨터에 설치되는 프로그램이다. 웹브라우저의 부족한 성능을 보완하기 위해 제작된 플로그인의 한 종류다.
하지만 MS의 IE에서만 동작하는 비표준기술이라 다른 브라우저를 쓰는 인터넷 이용자가 큰 불편을 감수해야 했다. 아울러 악성코드의 유통경로로 활용되는 등 보안에 취약하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았다.
실제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성인남녀 700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88%가 액티브X 설치로 인터넷 이용에 불편함을 겪는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온라인쇼핑몰 가입이나 물품구매에서의 불편함이 79.1%(중복응답 가능)로 가장 컸고, 은행거래 71.7%, 포털 등 인터넷사이트 가입 38.3%, 연말정산 등 정부 서비스 27.3% 등으로 나타났다.
일종의 규제가 되어 버린 공인인증서와 이에 파생된 프로그램이 우리 제품이 해외에서 판매되는 데 발목을 잡아 온 것이다.
문제는 이 같은 지적에도 천송이 코드의 구매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에 7월 28일 미래창조과학부는 뒤늦게 액티브X(ActiveX)가 필요 없는 공인인증서 보급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대통령이 4개월 전 직접 문제를 지적한 규제개선이 아직도 해소되지 않았다는 점은 우리 사회에서 한 번 뿌리내린 규제가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끈질긴 생명력을 갖는지 잘 보여준다.
특히 산업계를 중심으로 한 정부부처의 규제는 산업 전반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최근까지 제작사가 밝힌 차량 연비의 검증과 규제라는 유사기능을 가진 산업통상자원부와 국토교통부가 각각 상이한 검증 결과를 발표하면서 초래된 부처 간 불협화음은 결국 4000억원대의 소비자 소송까지 전화되고 있다.
천송이 코트가 우리 경제의 규제 현실을 대변하고 있다면 세월호는 정부와 업계의 유착에서 비롯된 부정부패를 대변하는 코드다.
정부와 여론은 세월호 참사를 막지 못한 안전관리 부실의 뿌리를 추적하면서 관피아라는 정부와 업계의 유착고리를 찾아냈다.
해양수산부 전직 관료들이 산하기관에 눌러앉아 업계의 방패막이 역할을 하면서 선박 안전 감독과 견제 기능의 상실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여객선사에 대한 감독권을 가진 한국해운조합 역대 이사장 12명 가운데 10명이 해수부 출신일 정도로 정경유착이란 이해타산의 고리가 맞물리면서 세월호 참사라는 비극의 씨앗이 됐다는 지적이다.
이 밖에 금융분야 곳곳에 포진한 모피아(재무관료 출신)와 금피아(금융감독원 출신)의 폐해는 금융사고나 비리가 불거질 때마다 지적됐다.
원전 비리에는 원전 마피아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문제는 관피아의 폐단이 새삼 불거진 게 아니라 모두가 늘 알던 문제였지만 이를 묵인한 사회 분위기에 있다는 점이다. 특히 정부와 정치권의 낙하산 인사를 묵인해 오면서, 이들의 정경유착 가능성을 방관해 오면서 오늘날 한국경제는 스스로 자초한 위험에 잠식당하는 모양새다.
이 같은 문제를 인식한 정부의 입장은 더욱 독해졌다.
이와 관련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24일 확대경제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새로 출범한 2기 내각 경제팀에 격정적이라고 느껴질 만큼 강한 어조로 질책했다. 특히 규제개혁과 관련, 박 대통령은 “국민이 ‘그만하면 됐다’, ‘체감된다’고 할 때까지 물고 늘어져야 한다. 모두가 다시 한 번 신발끈을 동여매고 경제 부흥을 위해 한마음으로 매진해 달라”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천송이 코트를 제차 언급하며 “개발도, 규제개혁도 전 세계 시장에서 어떻게 돌아가고 있나를 생각하고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우물 안 개구리가 돼서 우리 스스로 우스운 모습이 되고 만다”고 질책했다. 이어 장관들에게 “소관 부처의 규제 건의에 대한 실시간 진행 사항을 해당 부처의 성적표라고 생각하고 최우선으로 관리할 것”을 주문했다.
금융 규제 문제에 대해서도 “규제를 아무리 풀어도 일선 금융기관의 보신주의가 해소되지 않으면 성과를 거두기 힘들다. 금융기관 임직원들의 ‘사고만 안 나면 된다’는 의식 때문에 리스크가 있는 대출이나 투자를 기피하는 경향이 있어 돈이 제대로 돌지 않는다는 불만이 많다”고 말했다.
이 밖에 정경유착을 유발하는 공직자 부패와 관련해선 현재 국회를 중심으로 ‘김영란법’(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방지법 제정안)이 추진 중이다.
정홍원 국무총리 또한 최근 “국민들이 공직자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갖는 것은 공직사회의 끼리끼리 문화, 관피아 문제 등 부패가 그 원인”이라며 “공직사회의 변화가 느껴질 때까지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