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문명사는 지구의 자원을 소비하는 역사였다. 특히 산업혁명 이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석탄과 석유를 태웠다. 거기서 산업 에너지를 얻었고 그 대가로 온실가스 가득찬 지구에 살게 됐다. 오염은 기후변화(Climate Change)로 이어졌고 지구는 몸살을 앓고 있다. 더 이상 기후변화를 방치하다간 인류의 미래를 장담할 수 없게 됐다.
탄소배출권 거래제는 이렇게 예측 가능한 미래를 어떻게든 바꿔 보려는 시도 중 하나다. 출발은 유엔의 기후변화협약이다. 1988년 ‘지구온난화’라는 용어가 등장하면서 이에 대응하는 범지구 차원의 노력이 시작됐고 1992년 브라질 리우데자이네루 환경회의에서 기후변화협약을 성사시켰다. 이어 1997년 12월 일본 교토에서 열린 제3차 당사국 총회에서 이산화탄소, 메탄, 아산화질소, 수소불화탄소, 과불화탄소, 육불화황 등 6가지 온실가스의 배출 감축목표를 담은 ‘교토의정서’가 채택됐다. 미국의 비준 거부로 우여곡절을 겪은 교토의정서는 2005년 유럽 탄소배출권시장(ETS) 시범운영을 거쳐 2008년 공식 출범했다. 무려 20년 만의 일이다.
이름 그대로 탄소배출권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권리‘라고 표현돼 있어 오해를 일으키지만, 그 권리는 규제의 또 다른 표현이다. 먼저 각국 정부는 기업들에 탄소배출권을 나눠 준다. 지금 기업이 배출하는 탄소량보다 적은 권리를 나눠 준다. 정해진 기간 중 배출권보다 많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한 기업에 정부는 과징금을 부과한다. 과징금을 피하려면 온실가스를 적게 배출해 권리가 남아도는 기업, 숲을 조성하는 등 온실가스 감축에 기여한 기업들로부터 돈을 주고 이 권리를 사야 한다. 정부는 배출권 할당을 통해 기업들이 매년 의무적으로 줄여야 하는 배출한도를 제시한다. 기업들이 장기 계획에 따라 탄소배출 감축목표를 세우고 실천하란 뜻에서다.
지구를 살리자는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산업계의 저항은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이미 2013년 시행할 계획을 세웠지만 산업계의 반발에 밀려 2년간 늦춘 바 있다. 산업계는 다시 2020년 이후로 시행 연기를 주장한다. 사실상 도입 무산이다. ‘기업 활동에 과도한 부담을 주고 투자를 위축시키면서 실질적 효과가 없는’ 제도로 규정하며 “미국, 일본 등 선진국이 배출 규제 완화로 방향을 틀고 있는데 한국만 강행하겠다는 건 난센스”란 입장이다.
기업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탄소배출권 거래제는 엄청난 짐이 되기만 하는 걸까. 탄소배출권 전략을 제대로 수립하고 실천하는 기업이 오히려 온실가스 감축으로 추가 수익을 얻을 수 있다. 미국 환경보호청이 오는 2030년까지 화석연료 발전소의 탄소배출을 대폭 축소키로 하는 등 대부분 국가에서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탄소배출 감축 노력은 피할 수 없는 대세다. 규제는 강화되고, 그에 맞춰 새로운 시장 환경이 조성될 것이다. 중국이나 미국보다 먼저 탄소배출권 거래제를 맞이하는 우리 기업들이 탄소배출 감축을 위해 적극적으로 투자에 나선다면 이 분야의 리더가 된다. 투자의 결실은 탄소배출 감축뿐 아니라 재생 가능 에너지 등 미래 전략업종에서 경쟁우위로 이어질 수 있다. “왜 우리만 먼저 하느냐”는 볼멘소리 대신 “먼저 시작해 경쟁력을 키우자. 그래서 글로벌 시장을 선점하자”는 공세적 목소리가 필요하다.
일부 기업은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 CJ제일제당은 협력업체 30곳과 탄소배출권 사업에 대한 상생협력 관계를 약속했다. 협력업체들이 탄소배출권을 확보할 수 있도록 노하우를 전수하고, 탄소배출권 거래제를 새로운 사업 기회로 활용해 나간다고 한다.
그러나 정홍원 국무총리는 16일 국회에서 “산업계 부담 등을 고려해 관계부처 간에 좀더 논의하도록 하겠다”고 답변했다. 또 물러서는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