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이 기업 경영의 최대 화두가 됐다. 이제 안전경영은 경제계 리더들이 모인 자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의제가 됐다. 경영의 새로운 문화가 정착된 것이다.
최근 들어 국내 기업 대부분이 안전경영을 대대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한 번의 사고가 지난 수십년간 쌓아온 신뢰를 무너트릴 수 있다는 경험적 교훈이 자리한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최근 주요 업종별 600대 기업(212개사 응답)을 대상으로 실시한 안전경영에 대한 기업 설문조사에서 안전관련 투자를 축소하겠다는 기업은 3.3%에 불과했고 대부분이 투자를 ‘유지(74%)’ 또는 ‘확대(22.7%)’하겠다고 답변했다.
기업들의 안전경영은 온 나라를 슬픔에 잠기게 한 세월호 참사 이후 더욱 강화되는 모습이다. 한 대기업 임원은 “안일한 안전의식, 미흡한 안전관리가 세월호 침몰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밝혀지면서 상당한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산업현장에서 잇따라 발생한 안전사고도 안전경영의 고삐를 더욱 죄는 계기가 됐다”고 덧붙였다.
주요 그룹들은 관련 조직을 정비하고,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는 등 이미 안전경영 강화 총력전에 돌입했다.
삼성그룹은 지난 4월부터 전 계열사가 24시간 비상 당직 근무체제에 돌입했다. 아울러 삼성안전환경연구소를 그룹 내 환경안전과 관련한 업무를 총괄하는 조직으로 확대하고, 안전환경 인력을 300명 이상 늘렸다. 안전관리 및 사고 재발방지 등을 위해 연말까지 3조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최우선 가치를 ‘사업장 안전’으로 삼고, 다각적인 노력을 통해 예방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각종 안전사고 예방 및 대처 매뉴얼을 알기 쉽게 재정비하고 사업장별 전담 부서를 통해 수시 안전 점검을 실시 중이다.
SK그룹은 ‘Safety(안전)’, ‘Health(보건)’, ‘Environment(환경)’의 머리글자를 딴 ‘SHE 시스템’을 통해 안전경영을 강화하고 있다. SHE의 핵심은 매뉴얼에 따른 대응과 보고를 통한 공유 및 전사적 대응이다. SK이노베이션, SK하이닉스, SK텔레콤, SK건설 등 관계사들이 사고 예방은 물론 만일의 사태에 신속하게 유기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매뉴얼을 갖추고 있다.
LG그룹은 구본무 회장이 직접 나서 수뇌부와 핵심 계열사 대표이사들에게 안전관리 강화를 주문하며 조직에 긴장감을 불어넣고 있다. 현대중공업그룹의 경우 3000억원을 안전경영에 투입, 각 사의 재해 위험요인과 예방대책들을 점검하기로 했다.
유통가에서도 안전경영은 기업이 갖춰야 할 필수적인 경쟁력으로 인식되고 있다. CJ는 그룹 차원의 안전전담 조직인 안전경영실을 대표이사 직속으로 신설했다. 안전경영실 산하에는 산업안전 담당, 식품안전 담당, 정보보안 담당을 각각 두고 그룹 안전보안 역량 확대를 위한 로드맵, 전략 수립을 담당하게 했다.
이와 함께 재계는 경제단체를 중심으로 안전경영 강화를 위해 정부 지원을 요청하는 등 다방면으로 노력 중이다. 전경련은 최근 올해 말로 종료되는 기업의 안전설비투자세액공제의 일몰을 연장하고, 대상과 공제율 확대 상향, 안전경영과 관련한 새로운 세제지원책 신설을 정부에 건의했다. 정책적인 지원 확대가 산업재해 예방에 효과적일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경제5단체도 세월호 참사를 비롯해 최근 연쇄적으로 터진 각종 산업현장의 안전사고로 인한 국민들의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힘을 합쳤다.
허창수 전경련 회장,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한덕수 한국무역협회 회장,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 김영배 경영자총협회 회장 직무대행 등 경제5단체장은 지난달 말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안전 대한민국을 위한 경제5단체장 회의’를 긴급 소집하고 경제계의 역할을 논의했다. 경제5단체장이 경제 활성화 논의가 아닌 산업현장의 안전대책 마련을 위해 모인 것은 이번 정부 들어 처음이다.
이날 경제5단체장은 안전경영 선포식 개최, 노후설비 등 안전시설 점검, 재난대응 시스템 구축 및 전문가 양성 등의 사업을 펼치기로 했다. 특히 산업별·유형별 재난발생 대응 매뉴얼의 제정·보급, 재난의 예방과 대응을 잘하는 선진국 기업의 모범 사례 발굴·전파, 안전 및 재난 관련 분야의 기술연구 촉진에 나서기로 합의했다. 이는 안전경영이 더 이상 어느 한 기업의 단순한 노력으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안전경영이 곧 기업의 경쟁력이 된 시대인 만큼 산업계에 다양한 노력들이 계속될 것”이라며 “기업들이 시설투자에 보수적이지만 안전 관련 투자에 적극성을 띠고 있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