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를 모은 책치고 수준이 높아서 읽는 데 애를 먹었던 책을 소개한다. ‘인생 부자들’은 책 제목대로 세속적인 기준의 부자가 아니라 인생 부자들이다. 가수 장사익, 컬렉터 현태준, 문인 문정희, 기업가이자 예술가 김창일, 가수 한대수, 탤런트 김미숙, 첼리스트 정경화, 광고인 김홍탁, 사진예술가 김아타, 스님 정목, 한국학 연구가 김열규. 독자들에게 “이렇게 한 평생을 살 수도 있구나”라는 탄성과 아울러 자극을 자아내는 책이다.
맨 마지막에 소개된 김열규 교수의 인터뷰로부터 책읽기를 시작했다. 작년 10월 타개한 김열규 교수는 한국학 분야의 대가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무엇보다도 이 인터뷰는 고인이 마지막으로 가졌던 인터뷰이기 때문에 의미가 깊다. 서강대 교수직을 그만두고 59세에 경남 고성으로 낙향한 고인은 인생의 끝자락에서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은퇴 이후에도 계속해서 책을 펴냈던 김열규 교수는 한 여름 땡볕에서 김매기에 여념이 없던 한 할머니 이야기를 전해준다. 땡볕에 일하는 모습이 안쓰러워서 김 교수는 “할머니 이런 날씨에 이런 험한 일을 하십니까”라고 묻는다. 할머니는 “이게 다 낙 아인교”라고 답하는데, “이게 다 낙(樂) 아닙니까”라는 의미다. 김 교수는 털석 주저앉고 말았다고 한다. 한여름 밭에서 인생철학의 교사를 만났기 때문이다. 인터뷰의 묘미는 한두 문장이 우리의 정신을 깨울 수 있다는 점이다.
“나이 마흔다섯까지 굼벵이처럼 지내던 제가 올해도 19년째 노래를 부르며 산다는 것도 무척 좋지유. 전 무대에 설 때마다 엄청 신나유.” 가수 장사익씨의 인생 이야기는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가구회사, 무역회사, 독서실 운영에 카센터 사무장까지 25년 동안 이것저것 해봤지만 좀처럼 풀리지 않았던 그의 인생 이야기는 인생의 고단함을 말해준다. 잘나가는 장사익씨의 지금은 어떤가. 인터뷰에서 그는 ‘육체의 가시’가 여전함을 털어놓는다.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는 게 세상 삶이 아닐까요? 어떻게 일 년 열두 달이 항상 신바람이 나고 좋기만 하겠어요.” 우리가 살아내야 하는 삶 자체를 이렇게 정의해 버리고 나면 주눅 들어야 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좋은 날은 좋은 날대로, 궂은 날은 궂은 날대로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사업가뿐만 아니라 세계적 미술품 컬렉터로 유명한 아라리오그룹의 김창일 회장은 미술계에선 ‘기인’으로, 건축계에서는 ‘졸부’로 불린다고 한다. 후자는 아마도 시샘에서 나온 평가일 것이다. 사업을 해서 번 돈을 비슷한 사업 확장에 사용했다면 김창일 회장을 주목하는 사람이 누가 있었을까. 돈을 기준으로 하면 세상에 김 회장보다 부자는 많다. 하지만 그는 미술품 컬렉터로서 박물관 건립 등으로 자신의 영역을 확장하기 때문에 놀라움을 주는 사람이다. 인터뷰어는 단도직입적으로 “어떻게 하면 성공하고 돈을 많이 벌 수 있는지요”라고 질문을 던진다. 김 회장 이야기는 이렇다.
“제 관찰에 따르면 성공한 사람들은 예외 없이 좋은 습관을 갖고 있습니다. 자, 보세요. 사람이란 결국 제3자에게 발탁되면서 성장하는 겁니다. 그런데 좋은 습관을 가진 사람을 세상은 결국 알아냅니다. 매사 부정적이고 대충대충 살면서 좋은 습관을 가진 것처럼 시늉만 한다면, 아마추어에겐 잠시 통할 순 있지만 결국 눈 밝는 사람들에게 발각되는 법입니다.”
인터뷰도 이처럼 격조 높을 수 있을까를 가르쳐 주는 책이며, 치열함이 어떤 것인가를 깨우쳐 주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