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안전 양호 등급을 받은 화력발전소에 잇딴 사고가 발생하면서 안전검증의 부실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세월호 사고의 여파가 채 가지지 않은 마당에 2차 피해가 극심한 화력발전의 안전점검 체계의 실질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산업안전보건법 제49조의2에 의해 화력발전소와 같이 유해·위험설비를 보유한 사업장에 대해 공정안전관리 이행상태평가(약칭 PSM평가)을 실시하고 있다. 공정안전자료·공정위험평가서·안전운전계획·비상조치계획 등을 분석한 결과로 고용노동부가 4년에 1번씩 평가한다. 평가등급은 P(Progressive·우수),S(Stagnant·양호),M+(Mismanagement+·보통), M-(Mismanagement-·불량)다.
19일 변압기 폭발로 추정되는 화재를 일으킨 당인리 화력발전소(서울 화력발전소) 또한 지난 2012년 안전관리 평가에서 양호 판정을 받았다. 서부발전의 태안화력발전본부는 지난해 12월을 전후로 추락사고 등 세건의 안전사고가 연달아 일어났다. 태안발전본부는 4년 주기의 평가에서 2002년 우수,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줄곧 양호 판정을 받았던 곳이다.
지난 4월 동서발전의 당진화력에선 시설 정비 작업 중이던 조모씨(53)가 작업대에서 50m 아래로 추락해 현장에서 숨졌다. 이 발전소는 지난해 10월에도 신축공사 현장에서 용역업체 근로자 진모씨(37)와 고모씨(51)가 50m 아래로 추락했다. 이 사고로 진씨는 그 자리에서 숨지고 고씨는 크게 다쳤다. 하지만 당진화력은 PSM평가에선 2002년부터 지난해까지 줄곧 양호판정을 받았다.
2009년 보통판정을 받았다가 지난해 양호판정으로 상향된 남동발전 삼천포화력의 경우 지난해 12월 발전소 내 PVC 야적장에 화재가 발생했다. 약 50여분 만에 불은 진화됐지만 야적장은 발전 설비들과 거리상 가까워 자칫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는 평가다.
전문가들은 이같이 수년간 안정성의 양호 판정을 받은 화력발전소들의 안전사고가 끊이지 않는 것은 안전점검의 실효성을 상실했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문제는 전력을 직접 담당하며 각종 유해물질을 가지고 있는 화력발전소의 경우 안전성이 확보되지 않을 경우 2차, 3차 사고의 파급력이 매우 크다는 점이다. 실제로 정부자료 ‘화력발전소 유해·위험물질 리스트’를 보면, 국내 26개 화력발전소의 유해·위험물질은 75종에 달한다. 이 가운덴 수소·염소·수산화나트륨·하이드라진·치아염소산나트륨·암모니아 등 폭발이나 가열이 됐을 때 사람에게 치명상을 안길 수 있는 물질도 있다.
한 전문가는“각 화력발전소는 유해·위험물질을 취급하기 때문에 대형사고가 터지면 근로자뿐만 아니라 인근 주민까지 큰 피해를 입는다"며 “제2의 세월호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선 매너리즘에 빠진 정부점검과 발전사들의 전시성 행정을 벗어난 근본적인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