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상암동 팬택 R&D센터에서 열린 신제품 ‘베가 아이언2’ 기자 간담회 Q&A 세션이 끝날 무렵 문지욱 부사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많은 기자들이 한 번에 2~3개의 질문을 쏟아내면서 예정된 Q&A 시간이 5분 가량 초과했을 때다. 무슨 할 말이 남았을까. 현장에 있는 기자들은 물론 팬택 관계자들도 모두 귀를 기울였다.
문 부사장은 “예정에 없었지만 얘기를 꼭 하고 싶었다”며 천천히 입을 뗐다.
이어 문 부사장은 “명품을 지향하는 많은 IT기기들이 메탈 가공을 채택하고 싶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메탈 가공은 플라스틱 가공 대비 (원가가) 10배 차이가 납니다. 가격 리스크, 수급 리스크가 크다는 얘기입니다. (메탈 가공을) 채택하는 것만으로도 수 십만원에서 수 백만원까지 가격 차이가 납니다”라고 말했다.
많은 이들의 관심을 가졌던 베가 아이언2의 가격 책정 범위를 염두하고 한 발언이었다. 이날 팬택은 베가 아이언2를 발표하면서 가격은 ‘미정’으로 남겨뒀다. 이동통신사 영업정지,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단통법) 시행 등 대외적인 악조건과 타사보다 높은 원가 수준 간에 절충점을 찾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실제 이날 박창진 마케팅본부자은 “가격에 대한 고민이 크다”며 고민을 솔직하게 토로하기도 했다.
사실 이날 팬택의 신제품 출시는 많은 우려의 눈빛 속에 이뤄졌다. 두 번의 워크아웃, 자금난 해결, 경영 정상화라는 큰 숙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이날 질문 중에는 “무리수를 둔 것 아니냐”라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팬택은 끝까지 연신 ‘최고 기술’, ‘최고의 디자인’을 내세우며 엔들리스 메탈(하나로 이어진 금속테두리) 기술에 대한 자부심을 내보였다. ‘차별적’, ‘장인정신’이라는 단어를 앞세워 “국내에 있는 어느 제품보다 원가가 높다”고 숨김없이 얘기했던 것도 제품 완성도에 대한 자신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런데 정작 최대 승부처로 꼽히는 가격에서 주춤하고 한 숨을 내쉬고 있는 것이다.
팬택은 1990년대 벤처의 아이콘으로, 2000년대 들어서는 모든 기업이 쓰러져 갈 때 ‘오뚝이’ 기업으로 내실을 다져왔다. 그리고 모진 풍파를 견뎌왔고, 지금도 견디는 중이다.
스마트폰 시장 환경이 급변하고 있다는 것은 어느 제조 회사나 예견하고 있는 부분이다. 팬택도 예외는 아니다. 누구나 다 하는 고민을 하느라 독자적으로 갖고 있는 기술이 빛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그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을 것이다. 문 부사장은 마이크를 놓기 전에 “제품의 값어치만 가지고 가격을 책정하기 어려운 안타까운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영화 ‘아이언맨’ 속의 주인공 토니 스타크가 인공지능 컴퓨터 시스템 자비스에게 말했던 장면이 생각났다. “자비스, 때론 걷기보다 뛰기를 먼저해야할 때가 있어.”
‘돌 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야’할 상황인 팬택이 스마트폰 경쟁전에서 예상치 못했던 ‘강수’를 둔다면, 옛 영광을 다시 찾을지 누가 알까. 지금은 자부심 뒤의 한숨을 끝까지 참아내야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