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질에 무던한 세상 [홍샛별의 별별얘기]

입력 2014-02-24 0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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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시 시작됐다. 지겹다. 두더지 게임 같다. 시간이 지났다 싶으면 머리를 쏙 내밀고, 잠잠했다 싶으면 거품처럼 뽀글뽀글 떠오른다. ‘표절’은 그렇게 또 다시 대중의 도마 위에 올려졌다.

최근 시작된 표절 게임의 주인공은 영화 ‘수상한 그녀’ 측과 페퍼톤스다. 2014년 1월 개봉작 ‘수상한 그녀’의 OST ‘한 번 더’가 2005년 발매된 페퍼톤스의 ‘레디 겟 셋 고(Ready Get Set Go)’와 비슷하다는 네티즌 의견이 발단이었다. 현재 ‘수상한 그녀’의 투자ㆍ배급을 맡은 CJ엔터테인먼트는 “확인 중이다”고 명확한 입장을 미룬 상태다.

(사진 = CJ엔터테인먼트)

표절 논란은 종종 있었다. 2013년만 봐도, 4월에는 로이킴의 ‘봄봄봄’이 어쿠스틱 레인의 ‘러브 이즈 캐논(Love Is Canon)’과 표절시비에 휘말렸고, 10월 아이유의 ‘분홍신’은 넥타(Nekta)의 ‘히얼즈 어스(Here’s US)’와 일부분이 비슷하다며 표절 의혹을 받았다. 11월에는 프라이머리의 ‘아갓씨(I Got C)’와 카로 에메랄드(Caro Emerald)의 ‘리퀴드 런치(Liquid Lunch)’가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신기한 건 갖가지 표절 의혹의 귀결이 항상 “확인 중”으로 수렴한다는 것이다. 그 다음에는 장르적 유사성, 샘플링, 클리셰 등의 단어로 상황을 무마시킨다. 표절 논란에 휩싸인 쪽은 표절 기준의 법적 근거가 부족하다며, ‘무대응’이라는 대응방식을 고수한다. 실제로 사전심의제가 폐지돼 국내에는 정확한 표절 기준이 없다. 원작자가 고소해 법정에서 판정을 내려야만 표절로 인정되고, 이를 가려내는 절차와 과정 또한 복잡하다.

진짜 문제는 표절에 대한 ‘인식’이다. 한국인의 특성상 내 것, 남의 것의 구별이 정확하지 않고, 사적 영역 침범에 무척이나 관대하다. 창작의 고통이 얼룩진 창작물을 지우개나 펜 빌려 가듯이 가져다 사용하는 무던함은 외국에선 찾아볼 수 없는 기현상이다.

예술적 영역을 넘어 논문이라는 지적 영역에서도 한국인의 무던함은 여실히 나타난다. 새누리당은 지난 20일 최고위원회의를 통해 박사논문 표절 논란으로 자진 탈당했던 문대성 무소속 의원의 복당을 결정했다. 새누리당이 밝힌 복당 이유는 가관이다. “논문 표절은 체육계 등에서 관행적으로 이뤄져 왔으나 문 의원에게만 가혹한 잣대를 적용했다”며 “문 의원의 공은 7, 과는 3”이라는 것. 당당하게 표절을 관행으로 표현하는 무던함은 뻔뻔함을 넘어서 몰염치와 파렴치에 가깝다.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322회 국회(임시회) 8차 본회의에서 새정치연합 안철수 중앙위원장(왼쪽)과 문대성 의원이 인사를 나누고 있다.(사진=뉴시스)

표절(剽竊)의 ‘절’자는 훔치다, 도둑질하다의 뜻을 내포한다. 표절은 다른 사람의 저작물 일부 또는 전부를 몰래 따다 쓰는, 일종의 절도 행위다. 이는 기본적인 윤리의식의 결여에서 출발한다. 다른 사람의 재물을 훔쳐야만 절도는 아니다. 그 사람의 생각과 의견, 표현의 집약체를 허락 없이 차용하는 것 또한 도둑질이다.

새누리당은 맷집 좋게 대중의 뭇매를 실컷 맞고 문대성 의원 복당 건을 유야무야 마무리 지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절도를 용인한 새누리당에 국민이 허락할 수 있는 신뢰의 정도에 대해서는 단단히 각오해야 할 것이다. 국민은 표절에 무던할지언정, 표절이 무언지도 모르는 바보는 아니다. 표절은 명백한 죄(罪)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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