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와 힐링]1월을 상징하는 '굴거리나무'

입력 2014-01-06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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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만의 나무 이야기

고대 로마인들은 야누스(Janus)를 문(門)의 수호신으로 숭배했다. 문은 낡은 세계를 끝내고 새로운 세계로 진입한다는 상징적 의미가 있으므로 야누스를 모든 사물과 계절의 끝과 시작을 주관하는 신으로 여긴 것이다. 1월의 영어 재뉴어리(January)도 ‘야누스의 달’을 뜻하는 라틴어 야누아리우스(Januarius)에서 유래된 것이다. 한 해를 시작하는 1월은 지나간 해를 보낸다는 의미와 새해를 시작한다는 의미를 동시에 갖고 있다.

‘묵은 것을 보내고 새것을 맞이한다’ 또는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한다’는 의미를 지닌 1월을 상징하는 나무가 바로 ‘굴거리나무’다. 굴거리나무과 상록소교목인 굴거리나무는 새 잎이 나와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힌다 싶으면 묵은 잎이 일제히 떨어져 나간다. 인생사에 비유하자면 때가 되면 후손들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명예로운 은퇴를 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것도 후손들이 받을 준비가 다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모든 것을 물려주고 떠나는 것이다. 그래서 중국 이름도 ‘서로 물려주고 받는다’는 뜻의 ‘교양목(交讓木)’이다.

굴거리나무의 일본 이름은 ‘물려주고 떠나는 잎’이라는 의미의 ‘유즈리하(讓葉)’다. 이 역시 묵은 잎과 새 잎의 조화로운 교체를 뜻한다. 송구영신의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일본에서는 1월을 상징하는 나무로 여기고, 정월 초하룻날 새해를 맞이하면서 집안을 장식할 때 굴거리나무 잎을 바닥에 깐다.

우리나라 이름은 이 나무의 가지가 굿을 하는 데 이용됐다고 해서 굿거리나무가 굴거리나무로 변한 것이라는 설과 묵은 잎은 고개 숙인 것처럼 보이므로 숙이고 산다는 의미의 굴거(屈居)에서 유래됐다는 설이 있다. 어떻게 보면 곧추서서 붙어 있는 새 잎은 두려울 것 없이 나아가는 젊은이, 고개를 숙이고 붙어 있는 묵은 잎은 쓸쓸히 퇴장하는 은퇴자처럼 보여 씁쓸하기도 하다.

굴거리나무는 우리나라 남부 해안이나 도서지방에서 자생하는 상록활엽수로, 북방한계선은 내장산 자생지로 알려져 있다. 내장산 내장사 부근 급경사지 두 곳에 총 300여 그루가 군락을 이뤄 자생하고 있는데, 습한 토양환경을 선호하는 수목의 특성상 습한 북사면에 자생하는 것으로 보인다. 내장산 굴거리나무 군락은 학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천연기념물 제91호로 지정돼 보호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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