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와 힐링]탐라 이래 조선시대 종묘 제사에 진상하던 '귤'

입력 2013-12-30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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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영대의 생명문화재 이야기

한란의 그윽한 꽃향기에 취해 제주도에 머문 지 달포. 향기는 그래서 취각으로 남는 게 아니라 미련으로 남는가 보다. 필자는 추사 김정희의 유배지를 찾아가는 길에 내친김에 조선시대부터 남아 있던 귤나무 노거수를 찾아봤다. 제주도에 와서 한란도 중요하지만 어찌 추사와 귤을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제주시 애월읍내를 지나 묻고 물어 광량리의 한 농가를 찾았다. 주인장을 큰소리로 불렀으나 대답이 없다. 이웃집의 양해를 얻어 집안에 들어가니 그리 큰 나무가 없다. 자세히 살펴보니 그 집 담 너머에 작은 귤밭이 있고 그 집 뒤에 붙어 있는 노거수 ‘동정귤(洞庭橘)’이 보였다. 조선시대 진상품 귤 9종류 가운데 하나. 이 나무의 수령이 250년이 넘는다고 한다. 땅 바로 위 나무 둥치의 둘레는 두 아름이 넘고 이 바닥에서 다시 네 줄기로 자란 귤나무는 풍상을 겪은 모습 그대로다. 4·3항쟁 당시 북쪽의 가지가 불로 인해 고사했으며 다른 큰 줄기의 가슴에는 큰 외과수술을 받아야 했다고 한다. 그러나 아직 노령에도 열매가 실하게 열려 있었다. 이 귤은 지금이야 맛과 향의 순위에서 뒤처지지만 귤류 공물 중 상급에 꼽혔다.

태종 12년(1412년) 왕은 종묘 시절에 맞는 음식을 올리라고 명하셨다. 즉 2월에는 얼음, 3월에는 고사리, 4월에는 송어, 5월에는 보리·죽순·앵도·살구, 6월에는 능금·가지·동과, 7월에는 서직·조, 8월에는 연어·벼·밤, 9월에는 기러기·대추·배, 10월에는 감귤, 11월에는 고니, 12월에는 물고기·토끼였다.

그러나 세종은 제주의 진상품, 곧 동정귤(洞庭橘), 유감(乳柑), 청귤(靑橘) 등을 진상하는 것은 면제하도록 명한 적도 있다.

왜 그랬을까? 1427년(세종 9년) 6월 제주도 찰방 김위민은 몇 가지 폐단을 임금께 아뢴다.

“민간에서 과일 나무를 가꾸는 것은 앞으로 그 이익을 얻어 자손을 위한 계획 아래 하는 것이며, 또 민가에서 과일을 거두지 못하게 금하는 것은 이미 분명한 법령이 있는데, 지방관이 민가의 감귤을 진상한다고 칭탁하고 나무를 세 장부에 기록하고, 열매가 겨우 맺을 만하면 열매 수를 세어 감독해 봉해 두고, 혹시 그 집 주인이 따는 일이 있으면 절도죄로 몰아대고 전부 관에서 가져가므로, 백성은 이익을 보지 못해 서로가 원망하고 한탄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제주의 귤은 그랬다. 착취의 대상이었다. 제주도 사람들에게 귤은 자랑과 이익이기보다 고단함을 상징하는 작물이었다. 벼슬아치들에게 바치느라 뼈가 부서져라 농사을 지었 뿐이었다. 탐라 이래 백제나 신라에 감귤을 바쳤다는 기록이 보이니 그 폐단은 무려 천년이 넘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이젠 왕후장상(王侯將相)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손쉽게 사 먹을 수 있는 과일이 되었다. 얼마나 다행인가? 귤, 이제는 착취의 대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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