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국회와 재계에 따르면 이달 23일 정무위원회에서 통과된 ‘대기업 신규순환출자 금지법(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개정안)’의 연내 처리가 유력하다. 임시국회 본회의는 26일과 30일까지 두 번을 남겨두고 있다.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내년 하반기부터 자산 합계 5조원 이상의 대기업집단(출자총액제한대상)의 신규순환출자는 전면 금지된다.
다만 인수합병(M&A)이나 구조조정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신규순환출자는 허용된다. 또한 워크아웃이나 법정관리, 자율협약을 체결한 부실기업도 채권단과 합의할 경우 신규 취득한 지분을 최소 6개월~3년 안에 해소하는 것을 조건으로 순환출자가 가능하다.
◇정치권과 재계 첨예한 대립= 여야는 이번 개정안으로 대기업 계열사 간 출자를 통해 지배주주가 쉽게 지배력을 확장하거나 경영권을 승계하는 현상이 개선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아울러 부실 계열사를 내부에서 지원하는 행위도 차단될 것으로 보고 있다.
재계는 그러나 신규 투자가 위축되고, 경영권 방어에 대한 부담이 크게 증가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특히 ‘SK-소버린’, ‘KT&G-칼아이칸’ 등 과거 외국 투기자본의 경영권 찬탈 시도에 대한 경험이 공포심을 키우고 있다.
현재 순환출자 고리를 가진 대기업집단은 삼성, 현대차, 롯데, 현대중공업, 한진, 동부, 현대, 현대백화점 등 14개다. 삼성은 삼성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SDI→삼성물산→삼성에버랜드 등으로 이어지며, 현대차그룹은 현대차→기아차→현대제철→현대모비스→현대차의 순환 고리를 갖고 있다.
재계는 이러한 기존 순환출자 해소가 법안에서 제외된 것에는 안심하면서도 적대적 M&A에 대한 방어를 어렵게 해 부담이 가중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신규순환출자 금지법은 지금까지 진행된 각종 경제민주화 입법 및 규제와는 차원이 다르다”며 “기업의 존립을 위협하는 엄청난 파장을 일으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통상임금 확대, 엔저 심화 등으로 국내외 경영환경이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에서 미래 성장을 위한 기업 인수 등 신규 투자가 상당한 제약을 받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금산분리 강화… 또 다른 뇌관으로= 내년 본격화될 ‘금산분리 강화’ 움직임도 재계가 크게 우려하는 부분이다. 금산분리는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결합을 막는 것으로, 수년 전부터 논의돼 왔지만 재계의 반대에 부딪혀 진척되지 못했다. 하지만 최근 동양그룹 사태를 계기로 정치권의 대기업집단 금융계열사에 대한 규제 강화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으며, 재계의 최대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금산분리 강화에 대한 재계의 반발은 여전히 거세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최근 동양 사태는 금융계열사 규제와는 관련이 없으며 금산분리 정책의 실패로 볼 수 있는 것도 일부분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한경연 측은 “동양그룹 사태는 부실 계열사의 기업어음(CP)을 취급하며 위험성 있는 투자상품을 거래하는 과정에서 생긴 문제로, 금산분리의 강화를 주장하는 근거로는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금융계열사의 비금융계열사에 대한 의결권 허용 수준을 축소하는 것도 지나친 제약”이라며 “외부의 적대적 인수합병이나 외국 투기자본의 경영권 위협에 노출될 경우 단기 성과에 치중해 장기적 성장의 기회를 놓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신규순환출자 금지법이나 금산분리 강화 움직임이 장기적으로 대기업의 체질을 약화시킬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기존 순환출자와 구조조정을 위한 순환출자는 인정해준 만큼 당장의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면서 “다만 경영권 방어에 대한 상시적 피로가 누적돼 국내 산업계의 경쟁력이 전반적으로 하락될 가능성이 크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