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방송국의 ‘힐링캠프’라는 프로그램이 한때 큰 인기를 끌었다. 대선 때는 대통령 후보들이 앞다퉈 그 프로그램의 주인공이 되었는가 하면 스님, 축구선수, 영화배우, 식당 사장 등도 힐링의 대상이 되었다. 재밌는 것은 현 대통령과 그 프로그램 여자 MC가 대목(?)을 봤다는 얘기다.
그 ‘힐링캠프’에 보통사람들은 주인공이 될 수 없다. 그렇다면 ‘힐링캠프’보다 더 좋은 곳은 없을까? 필자는 감히 고금 최상의 힐링 쉼터인 창덕궁 후원을 추천하고 싶다.
지난달 말 일찍 창덕궁 정문인 돈화문을 지나 정전이나 편전, 동궁전 등을 피해 후원을 찾았다. 숲 속은 이미 단풍이 물들기 시작했다. 좌우에는 천연기념물급인 수백년 나이의 노거수들이 즐비했으며 그 종수도 다양했다. 노거수들는 단순한 나무가 아니다. 순조 30년(1830년) 이전에 제작된 ‘동궐도(東闕圖)’에도 그대로 그려져 있었던, 궁궐과 함께 살아왔다는 한마디로 ‘생명문화재’인 셈이다. 이들은 단순한 하드웨어가 아니다. 소프트웨어와 영성(靈性)이 함께 들어 있는 역사적 생명체다. 나는 그들과 교감을 했다. 오는 과정에서 적어도 한 그루씩 10분 이상 그들과 머리·가슴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회화나무, 느티나무, 향나무, 상수리나무, 매화나무들에게서 치유를 받았다. 그리고 열심히 걸어 부용지에 닿았다. 정조대왕이 휴식을 취하고 학문과 교육을 하던 매우 아름다운 곳이다. 300년 이상 된 목조건물 영화당(暎花堂) 마루에 앉아 아름다운 정자 부용정과 맑은 부용지를 쳐다보면서 필자가 정말 좋아하는 조선의 왕 정조를 깊이 생각해 봤다. 어수문과 주합루 또한 멋진 모습으로 내 눈을 행복하게 했다. 주합루 아래층은 정조대왕이 개혁 의지를 불태웠던 산실인 규장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