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논농사, 이렇게 바꾸자- 박기훈 농촌진흥청 벼맥류부장

입력 2013-10-25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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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한반도는 태풍 없이 지나가나 싶었다. 그런데 15년 만의 ‘가을 태풍’이라는 제24호 태풍 ‘다나스(DANAS)’가 찾아왔다. 농업 연구 분야에 발을 들여 놓은 후 해마다 ‘반갑지 않은 손님’인 태풍으로 늘 마음이 편치 않았는데, 벼 수확 시기에 찾아온 태풍 때문에 그 어느 해보다 마음을 졸였다. 다행히 다나스는 올해 벼농사에 큰 피해를 주지 않았지만, 태풍은 벼농사나 시설재배 농가에는 늘 반갑지 않은 손님이다.

저 먼 지구 밖의 ‘화성’에도 탐사 로봇을 보내고, 스마트폰만 있으면 전화는 기본이고, 기차표 예매부터 은행업무, 쇼핑 등 많은 것을 해결하는 21세기 첨단시대에 우리의 주식인 쌀농사의 ‘풍년 기원’을 언제까지 하늘만 쳐다보고 있어야 하는가. 더구나 우리나라의 곡물자급률은 22.8%, 이 중 쌀을 제외할 경우 3.4%로 심각한 상황에서 쌀을 생산하는데, 잦은 이상기후에 의한 불안감을 느끼고 살아야만 하는가? 이 같은 우려를 조금이라도 해소시킬 방법은 없을까?

다행히 우리나라에서 재배하는 벼는 재배 시기에 따라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5월 상순에 심어 9월 초순에 수확하는 ‘조생종’, 5월말 심어 9월 중하순 수확하는 ‘중생종’, 5월말 심어 10월 중하순 이후 수확하는 ‘중만생종’이다. 현재 벼는 평야지에서 중만생종을 대부분 재배하는데 점차 조생종과 중생종 벼의 재배비율을 효율적으로 조정하면 태풍으로부터 피해도 분산시키고, 동계 작물과 하계 작물의 농작업 기간이 겹치는 것을 줄이는 등 이로운 점이 많다.

조생종 벼의 확대는 이모작을 통해 경지이용률을 높일 수 있다. 이것은 바로 곡물자급률 향상으로 이어진다. 인구보다 경지면적이 좁은 우리나라에서 식량자급률을 높일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 중 하나는 바로 일 년에 두 번 이상 농사를 짓는 이·삼모작의 확대로 계속 낮아지는 농경지의 이용률을 높이는 것이다. 특히 일 년에 두 번 농사를 이어짓기를 했을 때 단작보다 벼+보리는 39%, 벼+밀은 35%, 벼+청보리는 43% 정도의 소득이 향상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남부지역에서 벼+하파귀리+청보리 등 세 번 이어짓기해 쌀과 조사료 생산으로 80% 이상 소득향상이 가능한 실증연구도 시도되고 있다.

이같이 조·중생종 벼 재배가 확대되면 가을 태풍이 발생했을 때 수확을 앞둔 중만생종 벼가 피해를 봤더라도 식량 수급 불안정을 해소할 수 있고, 농경지 재배 벼의 조풍 피해를 줄일도 수 있다. 1999년 이후 태풍에 의한 조풍 피해는 7회 발생하였는데 그중 5회가 8월 하순 이후 발생, 8월 중순 수확할 수 있는 조생종 벼를 조풍 피해 예상지역으로 재배를 확대하면 이 또한 농가의 안정적 벼 생산과 곡물자급률 유지에 도움이 될 것이다.

또 재배 비중이 80%가 넘는 중만생종 벼의 비중을 점진적으로 낮춘다면, 이모작 재배지역에서 동계 작물(밀, 보리 등)과 하계 작물(중만생종 벼)의 농작업 기간이 겹치는 것을 줄일 수 있다. 1억원가량 하는 값비싼 농기계인 콤바인 활용기간을 연장해 농기계 이용 효율도 높일 수 있다. 이 밖에 미곡종합처리장(RPC)의 벼 수확 후 관리도 지금보다 안정적으로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경지 이용 효율 개선을 위해 국가연구기관에서는 평야지에 재배하기 좋은 조·중생종 벼 품종을 더 적극적으로 개발하고 장기적으로는 조기·만기 재배형, 단기 생육형 등 다양한 품종을 개발해야 한다. 또한 지역별 맞춤형 작부체계 개발로 농가 소득 증대와 곡물자급률 증진에 힘써야 한다. 정부는 정책적으로 지원해 RPC에서 조·중생종 벼 품종이 선별적으로 수매돼 농가에서 조·중생종 벼를 재배토록 유도해야 한다.

이제 조·중생종 벼의 재배면적을 늘려 농경지에 두 번 이상 농사를 짓는 이·삼모작을 확대해 보자. 그래서 늘어나는 겨울철 유휴 농경지에 밀, 보리 등의 재배면적을 두 배 가까이 늘려 삭막한 겨울철 광활한 밀, 보리 초원을 만들자. 그러면 혹시 모를 전 세계적 기상이변으로 밀, 옥수수 등의 흉작으로 인한 식량파동에 따른 ‘그레인 쇼크’를 조금은 완화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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