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들이 금융당국의 민원 감축 요구에 따라 발벗고 나서고 있지만 손해율 상승으로 속앓이를 하고 있다.
최수현 금융감독원장이 지난 4월 보험사 민원을 절반으로 줄이라고 지시한 이후 보험 민원은 지난 5월부터 전년 수준으로 감소하고 있다. 보험 민원은 지난 4월 전년 대비 32% 증가한 4147건으로 올 들어 최고치를 찍었다. 그러나 5월 들어 3497건으로 급감한 뒤 8월에는 3106건으로 감소세를 나타냈다.
민원 건수는 감소하고 있지만 보험사들의 경영 상황은 악화되고 있다. 보험사들이 민원을 줄이기 위해 보험금 지급 심사를 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블랙컨슈머(black consumer·악성 소비자)에 대응해 보험금을 아낀 보상직원이 오히려 민원을 발생시켰다며 불이익을 당하는 상황까지 연출되고 있다.
분위기가 이렇다보니 보상직원 대부분이 느슨하게 보험금을 지급하는 실정이다. 이로 인해 보험사의 보험금 지급액이 급증하고 있다.
보험금 지급액이 급증하면 결국 보험료 상승으로 이어져 오히려 소비자에게 부담을 줄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삼성·한화·교보생명 등 3대 생보사의 지난 2분기 보장성보험 보험금 지급액은 총 1조6478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1조5517억원보다 6.2%(961억원) 늘어난 것이다.
삼성·현대·동부·LIG 등 4대 손보사의 2분기 보장성보험 보험금 지급액도 전년 동기 대비 8.9%(927억원) 증가한 1조1367억원을 기록했다.
보험사별 보험금 지급액 증가율은 LIG손해보험이 15.5%로 가장 높고 동부화재(14.9%)·삼성화재(9.5%)·삼성생명(7.9%) 순으로 나타났다. 그동안 7개 생·손보사의 연평균 보험금 지급액 증가율이 5% 정도였던 것을 감안하면 매우 높은 수준이다.
자동차보험 손해율(보험료 대비 지급 보험금)도 크게 올랐다. 삼성화재의 자동차보험 손해율은 6월 기준 81.5%로 지난해 같은 기간 75.2%에서 6.3%포인트 상승했다. 보험료로 100원을 받으면 이 가운데 81.5원을 보험금으로 지급한 셈이다. 여기에 운영비 등 사업비를 빼고 나면 남는 게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같은 기간 동부화재의 손해율은 72.7%에서 78%로, 현대해상은 79%에서 87%로, LIG손보는 77.1%에서 82.5%로 각각 올랐다.
보험사들의 보험금 지급액이 늘고 손해율이 오른 데에는 민원 감축 압박의 영향이 가장 크다는 것이 업계의 전반적 시각이다.
금감원은 현재 수시로 민원 현황을 집계하고 있으며, 성과가 좋지 않은 회사는 최고경영자(CEO)를 징계할 수 있다면서 보험사들을 압박하고 있다. 보험사들은 보상팀별로 민원 감축 목표치를 정하고 인사 평가에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재린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보험금 지급 심사 완화는 도덕적 해이와 밀접한 관련이 있기에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면서 “장기적으로는 보험금 지급보다는 소비자 민원의 근원이 되는 불완전판매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