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과 민주당이 회동 형식과 의제를 두고 다시 한 번 충돌하면서 9월 국회 파행을 예고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여야 대표와 원내대표가 모두 참석하는 5자 회담을 통해 민생을 논의하자고 제안했지만, 민주당은 국정원 진상규명을 의제에 담아 대통령과 김한길 대표 간 단독 회담을 주장하며 거절했다. 이에 따라 이번 주 중 성사를 목표로 추진해 온 대통령과 여야대표 간 3자 회동 협의도 중단됐다.
박 대통령은 26일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정치권은 민생을 위해 정쟁을 접고 국민을 위해 나서야 한다”면서 “민생 회담과 관련해서는 언제든지 여야 지도부와 만나서 논의할 생각이 있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국민이 간절하게 원하는 민생 안정을 위해 정부와 정치권이 존재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민생과 연결시킨 5자회담을 강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대통령은 또 민주당이 지난 대선을 3·15부정선거에 비유한 것을 두고 “작금에는 부정선거까지 언급하는 데 저는 지난 대선에서 국정원으로부터 어떤 도움도 받지 않았고 선거에 활용한 적도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 김관영 수석대변인은 “국정원 불법 대선개입 사건에 대한 철저한 진상 규명과 성역 없는 책임자 처벌, 국정원 개혁에 대한 확고한 입장 표명 없이 민생만 논의하자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비켜가는 것”이라고 즉각 거절의사를 밝혔다.
그는 “대통령과 야당 대표가 만나서 민주주의 복원과 국정원 개혁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민생에 관한 의제도 논의될 수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양측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내달 2일부터 자동 개회되는 9월 정기국회가 당분간 개점휴업 상태를 이어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박 대통령은 특히 “국민을 위해 협조할 것은 초당적인 마음으로 임해야 한다”고 민주당을 압박, 원하는 대로 끌려다니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민주당도 정국 정상화 방안으로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에 대한 박 대통령의 사과 △남재준 국정원장 사퇴 △국회 국정원개혁특위 설치 △특검을 통한 진상 규명 등 4가지 조건을 내건 상태여서 경색된 정국의 해법을 찾기가 좀처럼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새누리당 비박근혜계 의원들 사이에선 국회 정상화를 위해 박 대통령이 통 큰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어 주목된다.
한 중진 의원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일단 대화가 시작되면 국정원 문제도 자연스럽게 얘기할 수 있을 텐데 민주당이 굳이 형식을 따지는 건 회담을 정쟁으로 이끌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라면서도 “대통령 또한 대화의 진정성을 담보하기 위해선 양보하는 결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앞서 MB정부 땐 미국산 소고기 협상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으로 꽉 막힌 정국이 이어지자 이명박 대통령이 먼저 손학규 민주당 대표에 단독회동을 요청, 취임 석 달 만인 2008년 5월20일 첫 영수회담이 열린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