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창문세는 어리석은 조롱거리로 전락했다. 세원포착에는 그만이었지만 재산세에 대한 개념이 확립되지 않은데다 창문에 세금을 물린다는 발상 자체부터 벽에 부딪혀 강한 조세저항에 직면했다. 심지어 창문을 벽으로 개조해 절세에 나서는 시민까지 급증했다. 창문의 개수 대신 창문의 폭을 과세 기준으로 삼았던 프랑스에서는 창문을 좁고 길게 만드는 건축이 유행했다. 이는 집안의 일사량 감소로 이어져 건강과 위생을 위협하는 부작용을 낳았고 결국 1851년 신설된 주택세에 바통을 넘기며 폐지됐다.
정부가 8일 발표한 2013년 세제(稅制) 개편안에서도 대혼란의 냄새가 난다. 창문세처럼 걷을 생각만 했지 그에 따른 부작용과 반작용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아서다. 개편안을 놓고 “세금을 걷는 건 고통을 느끼지 않게 거위의 깃털을 살짝 빼는 것”이란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의 비유나 “한 달에 만 원가량 늘어나는 것은 국가적인 세수 증대 차원에서 십시일반 기여하는 것”이라는 나성린 새누리당 정책위 부의장의 발언에서 이런 무신경이 느껴진다.
중산층과 월급쟁이의 유리지갑만 쥐어짠다는 비난 여론이 비등하는 등 분위기가 갈수록 심상치 않다. 장외투쟁 중인 민주당은 오늘부터 세금폭탄 저지 서명운동을 벌이며 기세를 올리고 있고 여당은 우여곡절 끝에 어렵사리 잡은 정국 주도권을 빼앗길까 전전긍긍이다.
사실 개편안에는 부자들이 혜택을 더 보고 있는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전환하고, 개편으로 추가되는 재원 전액을 근로장려세제(EITC) 등 저소득층 지원에 투입한다는 괄목할 만한 내용도 담겨 있다. 종교인에게도 소득세를 부과하는 대목도 주목할 만하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들은 “세법개정 효과를 모두 계산해보면 고소득자와 대기업 세 부담은 약 3조원 늘어나는 반면 서민이나 중산층, 중소기업은 6200억원가량 세 부담이 줄어든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왜 월급쟁이들이 이처럼 분노할까. 단순히 세금 부담이 연 16만원, 월 1만3300원가량 늘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고 본다. 오히려 취임 후에도 여러 차례 지키겠다고 약속한 ‘증세 없는 복지’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공약이 진원지가 되고 있다. 도그마같이 절대 지켜져야 할 철칙이 되어 오히려 일을 꼬이게 만들고 있다. 기재부가 분석한 이번 개편안에 따른 세수효과는 2조4900원이다. 이중 근로자 상위 28%에 해당하는 연봉 3450만원 이상 434만명의 늘어나는 세부담은 1조3000억원에 달한다. 증세가 명백하다. 그런데도 ‘사정이 이렇게 돼 죄송하다’는 말이 없다. 오히려 ‘백마는 말이 아니다’는 중국 고대 궤변론자의 말장난처럼 간접적인 증세라 증세가 아니라고 강변까지 한다. 대통령의 눈치를 보느라 무례한 사람들이 돼 버린 것이다.
게다가 일의 순서마저 뒤틀려 불쾌지수를 더욱 키우고 있다. 정부는 공약가계부를 통해 135조원에 달하는 복지공약 재원 중 51조원은 세입확충, 84조원은 세출절감으로 마련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정부부터 허리띠 졸라매면서 세출을 줄이는 모습을 보이고 세금을 더 달라고 해야 할 터인데 정부는 이런 상식적인 순서를 무시했다. 법인세나 금융거래세 등 고소득층이 혜택을 많이 보는 세목은 거의 손대지 않은 채 근로소득만 집중적으로 수정하려는 것도 모양새가 흉하기는 마찬가지다.
복지공약을 이행하려면 누군가 그만한 대가를 내야 하지만 지금까지 어떻게 되겠지 하는 그런 분위기였다. 그러나 이번 개편안에서 보듯 공짜는 없다는 사실이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다. 진실과 대면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정부는 조만간 개정안 관련 법률을 확정해 9월 정기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세부 조정에 앞서 증세냐 공약축소냐 하는 어려운 선택의 갈림길에 섰다는 사실을 고백하고 국민의 이해를 구하는 것이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