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수 급락과 투자자 무관심에 절반 이상이 상장폐지됐고 합병에 성공해 증시에 입성한 기업들의 주가도 고전을 면치 못했다.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시장’이란 혹평까지 나오고 있다. 성적표로 말하자면 낙제(F)를 겨우 면한 ‘D’ 수준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스팩시장에 회생의 기운이 감돌고 있다. 상장 ‘데드라인’을 코앞에 두고 잇따라 합병에 성공하면서 투자자들의 관심이 재차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일부 증권사들은 스팩 1기 막판 흥행을 이어받을 2기까지 준비하고 있다.
◇M&A 성공률 ‘45%’
스팩은 지난 2009년 말 비상장 우량기업의 우회상장 길을 터주기 위해 도입됐다. 1조원이 넘는 청약자금을 끌어모으며 대우증권이 상장 첫 테이프를 끊은 뒤 미래에셋, 현대 등 대형사들이 앞다퉈 스팩 대열에 합류했다. 중소형 증권사도 녹색에너지, 태양광, 게임 등 틈새시장을 노린 특화 스팩을 선보였다.
그러나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총 22개 스팩이 상장됐지만 증시 환경 악화로 12개가 청산됐다. M&A에 성공한 스팩은 10개에 불과하다. 합병 성공률이 45%밖에 되지 않는다.
합병 가치가 과도하게 저평가된 데다 합병 실익이 낮아 주주총회에서 번번이 가로막혔기 때문이다. 코스닥 직상장 문턱이 낮아진 데다 코넥스 시장까지 출범한 점도 스팩의 매력을 떨어뜨렸다.
그러나 최근 3년이라는 상장 기한을 앞두고 잇따라 합병 선언이 나오고 있다.
실제 지난 4월 키움제1호스팩의 한일진공기계와의 M&A를 시작으로 하이1호스팩이 디에이치피코리아를, 하나그린스팩이 선데이토즈, KB게임엔앱스스팩이 알서포트와의 합병을 각각 알렸다.
스팩 막차를 타기 위해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달려들고 있는 것이다. 12개에 달하는 스팩이 청산되면서 남아있는 스팩들의 희소성이 커진 점도 매력을 끌어올리고 있다. 특히 일부 스팩들이 대주주의 반대로 합병이 무산된 데 반해 키움제1호스팩이 주총 참여주주 전원 만장일치 찬성을 이끌어내는 등 분위기가 달라졌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1기 스팩들의 종료가 임박해지면서 우회상장을 희망했던 기업들이 몸값(밸류에이션)을 낮춰 합병을 시도하고 있다”며 “일시적이 아닌 시장 자체에 온기가 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2기 성공 위해선 증권사 역할 확대해야”
1기 스팩이 막판 활기를 띠자 우리투자, 키움 등 일부 증권사들은 2기 스팩을 준비하고 있다. 1기 실패를 교훈 삼아 일단은 몸집을 50억~100억원대로 줄여 선보일 계획이다. 소규모 합병을 통해 대상기업의 범위를 넓히겠다는 포석이다. 신(新)수익원을 찾는 증권사와 투자자, 이전보다 개선된 시장환경도 훈풍을 불어넣고 있다.
물론 성공 가능성에 대한 우려는 여전하다. 2기를 준비하는 대부분의 스팩이 이전처럼 정보기술(IT), 바이오 등 특정분야에만 국한돼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스팩시장이 활성화되려면 공모전 주주인 증권사 투자은행(IB)들의 역할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증권사들이 우량한 기업을 발굴해 상장 프리미엄을 높이고 자금조달에 의한 재무적 효과 이상의 경영 시너지를 창출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김준석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스팩 스폰서(증권사)가 우량기업을 발굴하고 스팩과의 합병을 통해 경영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그래야만 스팩이 매력적인 투자 수단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