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만해선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그래서 가장이 이 칼을 꺼내들 때마다 온 집안은 사시나무 떨 듯 두려움에 떨었다는 칼이다.
요즘 세상에서 ‘전가의 보도’는 관청이나 기업 비리에 대해 엄정히 대처하고 단죄하겠다는 뜻으로 쓰인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새 정부의 ‘보도’는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검찰이 전군표 전 국세청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은 하나의 사례다. 그는 “대가성이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무조사 무마 청탁을 위해 미화 30만 달러와 명품시계를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도 예외는 절대 아니다. 검찰청 안팎에서 터진 검사들의 비리ㆍ비위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해 법무부가 국회 법사위원들에게 국감자료로 제출한 ‘연도별·사유별 검찰직원 징계 현황’ 중 검사에 대한 징계 부분을 보면 지난 2008년부터 약 5년간 비위가 적발되어 모두 20여명이 징계를 받았다. 징계 사유를 살펴보면 금품이나 향응을 받은 경우가 11건으로 가장 많았고 품위손상이 5건, 직무태만이 2건, 직무상 의무 위반이 1건, 음주운전 등 기타 1건 순이었다. 여기에 검사가 여성 피의자를 조사실에서 성추행한 사건까지 터지면서 검찰의 위상은 땅바닥에 떨어졌다.
나아가 새 정부 들어 인사청문회 때마다 불거져온 ‘위장전입’은 이제 ‘죄송하다. 몰랐다’ 한 마디면 용서되는 시대가 됐다. 대통령 따라서 미국에 갔다가 성추행으로 나라 망신을 시키는 청와대 대변인은 이제 미국 검찰이 수사하고 나서는 지경이다.
비리 의혹을 ‘관행’으로 몰아버리는 일이 다반사다. 윗물의 도덕불감증이 이 지경이니 아랫물이 맑을 리 없다. 도덕불감증은 비리를 낳고, 부정의 방법은 더 교묘해질 뿐이다. 이쯤되면 더 이상 두려워해야 할 존재로서의 도덕적 당위성을 잃은 셈이다.
그럼에도 정치권과 이들 입법사정기관은 기업을 도덕성과 당위성을 외치며 압박하고 있다. 그러나 기업이나 국민이 이를 이해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9월 정기국회를 한달 앞둔 상황에 재계가 기업규제 법안에 다시 긴장하고 있다. 기업규제의 핵심은 9월 정기국회에 몰려 있다.
금융 계열사에 중간지주사를 의무적으로 둬야 하고 순환출자에 대한 명확한 규제도 나온다. 주총에 대한 방식도 이번 회기에서 결정될 예정이다. 이렇게 입법부가 법안을 개정하면 본격적으로 행정부와 사법부가 기업을 압박한다.
‘칼은 칼집에 있을 때 더 무서워야 한다’는 말이 있다. 새 정부의 ‘전가의 보도’가 떨어진 위상을 바로 세울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