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 미켈슨(43ㆍ미국)이 시즌 두 번째 정상에 올랐다. 단 한 번도 우승 경험이 없던 디오픈(브리티시오픈) 챔피언십에서다. 그는 이 대회 정상에 오르기 위해 무려 20년 간 지긋지긋한 징크스에 시달려야 했다.
미국인들은 열광했다. 리 웨스트우드(40ㆍ잉글랜드) 등 유럽 경쟁자들을 모조리 제치고 유럽무대에서 4년 만에 미국인 우승자가 탄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대회에서 20년 징크스를 깨고 정상에 설 수 있었던 데는 위기를 기회로 만든 결단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는 190㎝가 넘는 장신이자만 불안정한 드라이버샷은 최대 약점이었다. 그는 드라이버샷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전매특허’라 할 수 있는 고감도 쇼트게임 기술을 몸에 익혔다. 그래서 미켈슨을 ‘쇼트게임의 마술사’라 부른다. 바로 그것이 20년 넘게 PGA투어에서 꾸준한 성적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이다.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그는 2011년 마스터스에서 로프트 각도가 다른 2개의 드라이버를 사용했고, 올해 US오픈에서는 드라이버를 빼고 드라이버 대용 스푼(3번 우드)을 세팅했다.
같은 류의 클럽이라도 서로 다른 스펙을 활용해 전략적인 샷을 시도하려는 의도다. 과감한 결단력이 없다면 누구라도 시도할 수 없는 파격적인 세팅이다. 그러나 요즘 프로골퍼들 사이에서는 이 같이 파격적인 클럽세팅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우연의 일치일까. 아니면 그를 벤치마킹한 것일까. 이 같은 변칙적인 클럽세팅은 수년 전과 비교해 눈에 띄게 늘었다.
가장 쉬운 예로 하이브리드 클럽이다. 롱아이언이나 페어웨이우드와 같은 까다로운 클럽은 사용을 자제, 성공 가능성 높은 샷을 시도하겠다는 의도다. 같은 아이언이라도 솔(헤드 밑바닥)이 얇고 예민한 헤드보다 두툼하고 안정적인 헤드를 선호하는 사람도 크게 늘었다. 샤프트도 스틸 대신 카본을 선택하는 사람이 많다.
반면 웨지 수는 늘었다. 아마추어도 3~4개 이상의 웨지를 사용하는 사람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길고 까다로워진 코스에 완벽하게 대처하기 위해서다. 결국 틀에 박힌 클럽세팅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에게 합리적인 골프스타일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클럽세팅은 아니지만 박인비의 스윙도 좋은 예다. 박인비의 스윙은 교과서적인 골프이론과는 거리가 멀다. 그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변칙적인 스윙이라는 이유 때문에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그러나 요즘은 ‘스윙 템포와 리듬감이 좋은 스윙’이라는 극찬이 이어지고 있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과감한 결단력이 지금의 박인비를 만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요즘 사회는 무서울 만큼 빠르게 변화한다. 급변하는 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파격적 변신도 두려워 하지 않는 필 미켈슨의 결단력은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급변하는 흐름에 맞춰 변화하지 않으면 결국 도태하는 것은 자신이다.
변화를 두려워하는 사람, 오랫동안 정체된 사람, 진보적이지 못한 사람, 변화에 대해 두려움이 앞서는 사람, 미래에 대한 준비가 부족한 사람 또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사람, 합리적이지 못한 사람 등이다.
20년이면 강산이 두 번은 변한다. 요즘은 더 빠르다. 하루아침에 세상이 변하기도 한다. 1993년 PGA투어에 데뷔한 필 미켈슨이 20년 동안 톱프로로서 군림할 수 있었던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세상에 그냥 이루어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