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9월 법인을 설립해 콘텐츠 제작사업에 뛰어든 초록뱀은 2003년 최고시청률 47.7%를 기록한 SBS ‘올인’을 제작하며 존재를 알리기 시작했다. ‘올인’은 그해 백상예술대상과 한국방송대상을 휩쓸며 대중성과 작품성,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았다. 이어 ‘때려!’, ‘불새’, ‘주몽’ 등을 내놓으며 드라마 시장에서 자리 잡은 초록뱀은 2005년 코스닥 상장법인 코닉테크를 인수하면서 코스닥에 우회 상장했다.
초록뱀의 이름을 각인시킨 콘텐츠는 두말할 필요 없이 2007년 탄생한 MBC 일일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이다. 2006년 11월 첫 방송된 ‘거침없이 하이킥’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전국을 ‘하이킥’ 신드롬에 빠뜨렸다. 탁월한 이야기꾼 김병욱 감독의 연출력과 ‘야동순재’, ‘식신준하’, ‘꽈당민정’ 등 독특한 캐릭터가 만난 ‘거침없이 하이킥’은 방송가에 던져진 신선한 충격이었다. 초록뱀은 이후 ‘지붕 뚫고 하이킥’(2009),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2011)으로 ‘하이킥’ 시리즈의 계보를 이었다.
그러나 초록뱀이 순항만 거친 것은 아니다. 2007년 많은 제작비를 들인 블록버스터 드라마 ‘로비스트’가 기대 이하의 성적을 내면서 뼈아픈 손실이 이어졌다. 국내 드라마 시장의 열악한 환경이 가져온 결과였다. 초록뱀은 이를 타개하기 위해 미국 메릴린치사로부터 1500만 달러의 투자유치를 이뤄냈고 실적이 부진한 자회사를 매각하는 등 수익구조 개편을 단행했다.
뼈를 깎는 각오로 내우외환을 잠재운 초록뱀은 ‘추노’(2010), ‘오작교 형제들’(2011) 등이 히트하며 다시 날개를 달았다. 2010년 110억원대의 적자는 2011년 8억원대 흑자로 돌아섰다. 지난해에는 매출액 290억원, 당기순이익 15억원을 기록했다.
2013년 초록뱀은 천재 남매 듀오 악동뮤지션을 배출한 SBS 예능 프로그램 ‘K팝 스타 시즌 2’와 마니아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케이블 채널 tvN 드라마 ‘나인’으로 순조로운 한 해를 시작했다. 하반기에는 ‘하이킥’ 시리즈의 영광을 재현할 새로운 시트콤을 비롯해 4편 정도의 작품 편성을 예정하고 있다. 자회사 소속 방송인 탁재훈과 김성주가 전면에 나서는 예능 프로그램도 기획 중이다.
특히 초록뱀은 해외로 뻗어나갈 전망이다. 이미 SONY의 자회사 So-net과 손잡은 초록뱀은 일본은 물론 대만, 중국 진출도 가시화되고 있다. 현재 가장 큰 시장인 일본의 경우 미니시리즈가 편당 10만~15만 달러에 수출된다. 20부작 기준으로 200만~300만 달러의 매출이 발생한다. 하지만 한·일 관계가 경색되면서 한류 열풍도 주춤하고 있는 상황이기에 중화권 시장 개척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최영근 대표는 “문화적 특수성을 지닌 중국 시장에는 일방적인 수출이 아닌 합작 드라마를 통한 진출이 필요하다”고 진단하며 초록뱀의 우수한 콘텐츠 제작 능력과 드넓은 중국 시장이 만나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것임을 암시했다.
특히 초록뱀이 중점을 두고 있는 부분은 인적자원이다. 최 대표는 “유망한 신인 작가를 발굴하기 위해 꾸준히 투자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좋은 프로그램을 기획할 수 있는 기획 프로듀서를 양성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며 콘텐츠의 성패를 가를 인적자원 기반 마련을 강조했다.
[연예 산업 파워를 찾아서 ⑤초록뱀 미디어]최영근 초록뱀 미디어 대표 “위기일수록 소통 힘써 시청자 마음 움직여야”
초록뱀을 이끄는 최영근 대표는 탁월한 안목을 지녔다. MBC 예능국장과 TV제작본부장, MBC 글로벌 사장을 거친 그는 예능국장 재직 당시 한국 예능계에 한 획을 그은 ‘거침없이 하이킥’과 ‘무한도전’을 세상에 내놓은 주인공이다.
“콘텐츠를 기획할 때도 역지사지가 중요합니다. 상당수의 제작자가 기획 단계에서 시청자를 염두에 둬야 한다는 점을 놓치곤 합니다. 콘텐츠가 시청자에게 어떤 매력으로 다가갈지 끊임없이 분석하고 보강해야 합니다. ‘아니다’ 싶으면 바로 접을 수 있는 결단력도 필요합니다.”
드라마는 새로운 캐릭터와 트렌드를 제시해야 한다. 진부한 캐릭터의 나열은 더 이상 시청자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그는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내기 위해 효과적 재해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미 매체 환경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드라마 주소비층은 젊은층에서 중장년층으로 옮겨졌고 케이블 채널과 종편 채널이 생기면서 지상파 시청자도 많이 떠나갔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치열하게 기획한 드라마가 꾸준히 나와야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성공을 거둘 수 있습니다.”
다양한 작품을 내놓은 초록뱀이지만 한 가지 피하는 것이 있다. 바로 ‘막장 드라마’다. 시청률 지상주의는 ‘막장 드라마’란 부작용을 낳았다. 최 대표는 “높은 시청률과 작품성은 별개”라면서 “장기적 안목을 갖고 드라마를 제작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제작사의 가장 큰 고충은 제작 비용 문제다. 편성을 받기 위해서는 스타 캐스팅을 피할 수 없고, 작가들의 몸값도 계속 높아지고 있다. 제작비는 수직 상승하지만 시청률이 저조할 경우 이를 메워 줄 협찬, 국내 케이블 판매, 해외 판매 모두 저조해진다. 이렇게 해서 발생하는 적자는 제작자가 떠안는다.
“한 작품이 히트하면 자본이 축적돼야 자연스럽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드라마 제작의 리스크가 워낙 크기 때문이죠. 수지타산을 맞추기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작품 기여도에 따라 이익이 배분되는 시스템이 아직 완벽히 자리 잡았다고 보기 힘듭니다.”
2011년 최 대표가 취임했을 때 가장 시급한 과제는 흑자 전환이었다. 적자가 계속되면 기업은 문을 닫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는 콘텐츠의 성과를 최대한 이끌어 내는 것은 물론 관리·경영 측면에서 불필요한 비용을 줄이는 데 치중했다. 최 대표의 위기관리 능력과 직원들의 합심이 빛을 발하면서 초록뱀은 그해 바로 흑자로 돌아설 수 있었다.
“위기가 닥쳤을 때는 소통에 힘써야 합니다. 회사의 상황을 정확히 전달하고 경영진을 비롯한 직원들의 협조를 구했습니다. 한 배를 탄 사람들끼리 힘을 모았기에 좋은 결과를 얻었다고 봅니다.”
소통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최 대표의 생각처럼 초록뱀은 자유롭고 창의적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직원이 자율성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도와준다는 것이 그의 방침이다. 초록뱀이란 한 배를 탄 선장 최영근 대표와 선원들은 위기를 딛고 더욱 똘똘 뭉쳤다. 앞으로의 항해 여정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