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이 잘 드는 숲에서 깽깽이풀, 괭이눈, 너도바람꽃, 노루귀, 바람꽃, 복수초, 현호색 등 이름도 친숙한 우리 꽃들이 앞다퉈 핀다. 아직 아침, 저녁으로는 매섭게 파고드는 봄바람이 불고 기온도 영하를 오르내린다. ‘꽃샘추위’이다. 추운 겨울을 빨리 보내고 봄을 기다리는 이들에게 한껏 사랑받는 봄의 전령사인 봄꽃을 시샘하여 심술을 부리는 끝물 추위일 것이다. 대부분의 봄꽃이 흐드러지게 피기에는 아직 이른 시기이다.
그러나 지루한 겨울을 기다렸던 이른 봄꽃들은 무르익은 봄을 기다릴 수 없다. 아직 춘분 전이니 해도 짧고 그나마 구름 사이로 언뜻언뜻 비치는 가는 햇빛을 바라보며 때 이른 꽃을 피운다. 이렇게 일찍 꽃을 피우는 자생식물은 봄바람과 추위를 피해 개체도 작고 여리게 생겼다. 특히 벌이나 나비 같은 곤충들이 돌아다니지 않는 시기이므로 굳이 화려한 꽃을 피울 필요도 없다. 꽃의 색깔은 단순한 노란색이거나 흰색, 또는 은은한 파스텔 톤의 눈에 띄지 않는 수수한 색이 대부분이다. 모양도 현란하고 특이하지 않다.
이렇게 이른 봄에 소박한 꽃이 피기 시작하면 겨울은 서서히 물러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봄은 무척 짧다. 이른 봄꽃들은 혹독한 추위에는 강하지만 더위는 취약하다. 그러므로 더위가 밀려오기 전에 할 일을 다하고 조용히 땅속으로 숨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아지랑이 피고 봄이 왔구나 느낄 겨를도 없이 이내 여름이 다가와버린다. 특히 지구 기후변화가 심각한 요새는 그 경향이 더욱 심하다. 그러므로 이른 봄에 꽃이 피는 봄꽃의 대부분은 그 짧은 봄을 틈타 재빨리 꽃을 피우고 열매까지 맺어야만 한다.
아무리 봄 햇살이 따스하고 봄꽃이 강하다고 하여도 이른 봄철은 가녀린 봄꽃이 생존하기에 녹녹치 않은 환경이다. 쉴 새 없이 거칠게 불어오는 봄바람은 광합성을 위해 애써 열어둔 기공을 통해 체내의 귀중한 수분을 앗아가려 한다. 얼어붙은 겨울을 벗어나려고 수시로 내리는 봄비는 가뜩이나 부족한 하늘의 햇살을 더욱 가려버린다. 그러므로 이른 봄꽃들은 그 귀중한 햇빛을 아끼고 또 효율적으로 사용해야만 한다. 대표적인 이른 봄꽃인 복수초나 노루귀와 같은 식물을 실제로 관찰해보면, 해가 나지 않고 흐릴 때에는 꽃을 펼치지 않고 잔뜩 움츠려 닫고 있다. 식물에 필요한 광합성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악조건에서 굳이 꽃잎을 펼치고 추위와 건조한 바람에 맞설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른 봄꽃의 경제관념은 매우 철저하다. 그 가냘픈 몸매의 어디에서 나오는지 절제와 효율성, 검소함, 저축심이 온몸에 배어 있다. 절대로 쓸데없이 에너지를 소모하지도 않는다. 다른 식물들에 비해 짧은 생장기에 최선의 활동으로 생산된 광합성 산물은 낭비하지 않고 생명유지에 필요한 약간을 소비한 나머지는 모두 지하부에 저장한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이른 봄꽃들은 종자에서 발아한 어린 식물체가 꽃을 피울 수 있는 성숙한 개체에 이를 때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실제로 대표적인 이른 봄꽃인 복수초는 어린 식물체가 자라서 꽃을 피우기까지 무려 5-6년의 긴 시간이 걸린다.
최근 경제사정이 나빠진 이유도 있겠으나 1970년대 우리나라의 저축율은 27.5%에 달했으나 매년 줄어들어 최근에는 2%에 머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적자 살림에 의한 부채의 증가가 원인이 아닌가 생각한다. 물론 꼭 소비해야 할 곳은 써야하겠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운 여건일수록 근검, 절약하고 열심히 저축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조금씩 쌓여가는 저축에 의해 언젠가는 이른 봄꽃이 꽃을 피울 수 있듯 경제사정이 좋아지는 시기가 올 것으로 본다. 보잘것없고 하찮은 식물이지만 어려운 상황을 견디며 열심히 양분을 뿌리에 쌓아가는 봄꽃에서 살아가는 지혜를 배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