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드 모금은 국민의 선거참여 기회를 확대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후보자가 채무를 불이행하더라도 법적으로 제재할 수단이 없어 이것이 보편화되면 ‘먹튀’ 사건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치인 펀드는 선거 비용 마련을 위해 후보자가 일반 국민으로부터 돈을 빌려 쓴 뒤 선거가 끝나고 이자를 더해 되돌려 주는 방식으로 운용된다. 따라서 명칭만 ‘펀드’이지, 사실은 후보자가 유권자들의 돈을 빌려 쓰는 것이어서 양측은 채무자와 채권자 관계인 셈이다.
각 후보자는 선거에서 15% 이상을 득표하면 선거관리위원회가 전액을 보장해 주기 때문에 유권자들은 후보자의 득표 능력을 보고 펀딩을 할 것인지를 판단하면 된다.
선관위는 금융기관의 통상적인 이자율과 큰 차이만 나지 않는다면 정치자금법에 어긋나지 않는 것으로 보고 있다. 보통 펀드 이자는 3~6%를 가장 많이 채택하고 있다. 이는 정기예금 금리를 기준하는 것으로 이 이자율을 넘게 되면 유사 수신행위에 해당되는 것으로 금융당국은 판단하고 있다.
◇ 아직까지는 대박 행진 = 정치인 펀드는 지난 2010년 지방선거 당시 유시민 경기지사 후보가 최초로 도입한 이래 유행처럼 번졌다. 당시 유 후보는 법정 선거비용인 41억원을 3일 만에 모아 화제를 모았다.
유 후보의 이관희 비서는 14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그때 유 후보가 돈이 없다 보니 ‘친구한테 빌리는 건 가능하고 국민한테 빌리는 건 왜 안되느냐’라며 방법을 알아보라고 했고, 그래서 펀드 모집 아이디어가 나와 선관위 문의를 거쳐 시행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당시 유시민 펀드를 담당했던 김종연씨의 몸값도 훌쩍 뛰었다. 김씨는 현재 안철수 후보 캠프에서 후원회 팀장을 맡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문재인 후보의 펀드 기획도 담당했다.
김씨는 “십시일반으로 국민에게 빚을 지고 깨끗한 선거를 하면 더 의미가 있지 않겠느냐”라며 “실질적으로 돈을 내는 분들은 강력한 지지자가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치인 펀드를 시도했던 후보자들 대부분은 대박을 터뜨렸다. 지난해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박원순 후보는 연 3.60% 금리의 ‘박원순 펀드’를 만들어 개설 47시간 만에 목표 금액인 39억원을 모았다.
지난 4·11 총선 때는 경남 사천·남해·하동 선거구에 출마한 강기갑 후보가 1억7000만원을 목표로 연금리 6%의 ‘강달프 펀드’를 개설해 모집 5시간 반 만에 목표액을 달성했다.
무소속으로 서울 마포갑에 출마했던 강용석 후보도 연 6%의 금리로 펀드 개설 5시간 만에 2억원을 모았다. 강 후보는 실제 선거에서 4.3%의 득표에 그쳐 선관위로부터 선거비를 한 푼도 보전받지 못해 개인적으로는 큰 손실을 봤다.
후보자 입장에서는 선거자금을 조달하는 동시에 국민의 지지를 유도할 수 있고 유권자 입장에선 지지 후보에 대한 간접 후원이 가능하다는 것도 이점이다.
문제는 후보자가 15% 이상을 득표하지 못해 채권자인 유권자에게 돈을 갚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현재로서는 펀드를 모집한 후보자가 유권자에게 돈을 돌려주지 못하더라도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근거가 없다.
그래서 이른바 ‘먹튀’의 가능성이 존재한다. 펀드는 점차 확대되는 추세인 데 반해 법적으로 미비한 부분이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 문제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정치인 펀드는 국민의 참여가 가능하다는 데 의미를 부여할 수 있고, 그런 취지는 좋게 평가할 수 있다”면서도 “지나치게 보편화되면 돈만 먹고 튀는 ‘사기극’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보완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펀드를 개설한 경험이 있는 강용석 전 의원은 “정치인 펀드가 좋은 것만은 아니다”라며 “돈을 돌려줄 때 법적으로 공개 의무가 없어서 투명하게 처리하지 않으면 다른 불법 정치자금처럼 악용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이밖에 정치인 펀드 특성상 거치기간이 길지 않아 연금리가 6%라 하더라도 실제 투자를 한 유권자들이 손에 쥘 수 있는 이자는 크지 않다는 점도 투자시 유의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