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광화문을 지나다 보면 교보생명 빌딩 앞에 내걸린 ‘광화문 글판’을 보고 한번씩 잔잔한 감동을 느낄 때가 있다. 이 시구는 안도현 시인의 ‘가을엽서’ 중 한 구절이다. 빨간 단풍나무 그림과 거리에 펼쳐진 노란 은행나무가 잘 어울려 늦가을 정취를 더해 주고 있다.
광화문 사거리에서 광화문 글판이 처음 등장한 것은 고(故) 신용호 교보생명 창립자의 제안으로 지난 1991년 1월 내건 ‘우리 모두 함께 뭉쳐 경제 활력 다시 찾자’라는 메시지다. 당시 초기 문안들은 계몽적 성격이 강한 표어나 격언이 대부분이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시민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글을 주로 올리다가 최근엔 시민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글들이 주로 내걸리고 있다.
교보생명은 2010년 광화문 글판 20년을 맞아 광화문 글판에 올랐던 문안을 모아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라는 한 권의 책에 엮어 매년 판매하고 있다. 판매수익금 전액은 소년소녀가정, 다문화가정 등 어려운 이웃에게 용기와 희망을 잃지 않도록 지원하고 있다. 마음을 움직인 글판이 실제 어려운 이웃에게 실질적 나눔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 책에는 고은, 김용택, 정호승, 도종환, 정현종 시인과 유종화 평론가 등 국내 작가를 비롯해 공자, 헤르만 헤세, 알프레드 테니슨, 파블로 네루다 등 동서고금의 현인 작품이 수록돼 있다. 이중에는 이솝우화, 불교경전, 심지어 힙합 가사까지 인용돼 있는데, 문안 선정 과정과 일화도 담겨 있어 독자들이 광화문 글판에 가진 궁금증을 해결해 준다.
교보생명 건물 정면 가로 20m, 세로 8m 크기의 글판은 보는 이들에게 자로는 잴 수 없는 넓은 크기의 감동을 선사하고 있는 것이다.
부친의 정신을 이어받은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도 대표이사 취임 후 2000년 5월 ‘길이 없으면 길을 만들며 간다. 여기서부터 희망이다’라는 고은의 ‘길’ 시구를 인용해 경영의지를 나타낸 바 있다.
현재 광화문 글판은 광화문 거리 명소로서 시민들에게 따뜻한 마음을 나누고 어려운 이웃들에게도 작은 힘이 되고 있다.
광화문 글판 문안선정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소설가 은희경씨는 “광화문 글판은 어딜 가나 볼 수 있는 흔한 명언, 명구와는 달리 다양한 문학작품을 통해 용기와 희망을 전하고, 사색에 잠기게도 하며, 때로는 장난스럽기까지 한 점이 시민들로부터 사랑받는 이유인 것 같다”며 “앞으로도 지금처럼 시민들의 마음에 닿을 수 있는 문안들을 많이 소개하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