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런던 올림픽에서 한국 리듬체조 역사상 최고 순위인 5위(아시아 역대 최고성적)라는 기적 같은 결과를 이루어 언론으로부터 ‘체조요정’이란 애칭을 들었던 손연재가 이번에는 ‘슬픔에 빠졌다’는 기사로 모두를 의아하게 했다. 그녀는 이전부터 한국 리듬체조 역사상 최초로 아시안게임 동메달을 획득했고 국제체조연맹(FIG) 월드컵시리즈에서도 동메달 획득에 성공하여 “불가능을 현실로 바꿔 놓았다”라는 극찬을 들으며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과 2016년에 열리는 리우올림픽에서는 보다 나은 성적을 내리라는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던 그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다름 아닌 대한체조협회와 손연재의 소속사인 IB스포츠 사이의 갈등으로 인한 어처구니없는 사태가 바로 그녀에게 눈물을 흘리게 한 사연이다. 내용인즉슨 이번 런던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예브게니아 카나에바와 다리아 콘다코바(이상 러시아) 등 세계 정상급 선수들만 출전하는 이탈리아 초청대회인 ‘세리에 A’로부터 초청을 받아 경비 전액을 이탈리아 체조협회로부터 지원 받기로 하고 출국하려는 찰나 대한체조협회의 일방적인 불참 통보로 인해 항공권이 취소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손연재는 1994년생으로 아직 고등학교 3학년(세종고)이다. 올림픽이후 전국체전참가 등 그야말로 강행군의 연속이다. 노동당 출신의 전 영국 총리 토니 블레어(Tony Blair)의 지적 조언자(intellectual mentor)로 유명세를 떨쳤던 영국 런던정경대(London School of Economy)의 사회학과 교수인 리차드 세넷(Richard Sennett) 은 “현대인들은 시간과 재능 그리고 포기에의 도전을 받고 있다. 즉 변화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어떻게 자신을 관리할 것인가하는 시간의 문제와 개인의 능력에 대한 사회적 요구 그리고 어떻게 과거와의 단절을 실천에 옮기는가의 도전이다.”라고 그의 저서 ‘뉴 캐피탈리즘(The Culturr of The New Capitalism)’에서 주장했다.
손연재는 시간과 재능을 포기하려 하지는 않아 보인다. 아니 오히려 어른들이 그것을 재촉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번 일로 가장 피해를 본 사람은 바로 손연재다. 지난 런던 올림픽에서 “결승에 오른 것 자체가 내 목표였다. 정말 후회없이 했다”라고 앙팡 테리블(enfant terrible)스러울 정도로 거침없었던 손연재를 이렇게 만든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일까?
요즈음 세계적으로 이슈화 되고 있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WLB(Work & Life Balance)이다. 주요 국가들의 국민복지차원에서 우선순위의 정책이기도 한 이 WLB는 바로 ‘일과 삶의 조화’로서 WFB(Work & Family Balance) 그리고 FFP(Family Friendly Policy)로 발전하고 있다. 이것의 핵심은 바로 여가(leisure)와 여가시간(leisure time)이다.
노동시간이 늘어나면서 일과 삶의 시간 균형의 문제가 대두된다. 또한 그 반대로 여가시간이 늘어나는 경우에도 일과 여가와의 시간균형의 고민이 생긴다. 스포츠선수에게 노동시간은 연습시간과 출전시간일 것이다. 대한체조협회와 소속사인 IB스포츠는 아직 미성년자인 손연재의 여가시간을 생각해 본적이 있는가?
산업시대에 노동과 예술의 균형부족은 문화적 불안을 야기했다. 여가는 노동의 하위에 놓이게 되었고 일반적으로 수동적 형태를 취하게 되었고 멈퍼드(Mumford, Lewis)는 기계화된 문화와 과잉노동에 분노를 표한다. 손연재는 지금 과잉노동으로 보인다. K팝이 한류로서 현재 대한민국의 대중문화를 이끌면서 아이돌 아티스트 특히 미성년자들의 권익보호가 시급한 실정에서 가수뿐만이 아니라 미성년 체육인들의 권리보호도 당연 병행해야할 문제이다.
마르크스, 베버와 함께 현대 사회학의 3대 창시자중의 한명으로 불리는 프랑스의 사회학자 에밀 뒤르껨(Emile Durkheim)은 여가(leisure)의 정의를 “긴장을 완화하고 균형을 잡아줌으로써 진지한 삶과 나란히 발전해 나가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렇다. 손연재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WLB로서의 삶의 균형(balance)이다.
그동안 러시아 전지훈련, 각종 국제대회 참가 그리고 올림픽까지 협회의 도움 없이 혼자 선수 등록부터 대회 출전과 관련된 각종 제반 사항들을 처리했었다고 알려진 손연재는 이번 사태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선수가 협회와 대립하는 모양새는 가급적 피하고 싶어 말을 아끼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또한 손연재의 측근에 의하면 “갑인 협회가 을 선수를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이런 상황에 손연재는 충격을 받은 상태”라고도 전해지고 있는 이 안타까운 상황을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
지난 10월 7일 ‘LG 휘센 리드믹 올 스타즈 2012’ 갈라쇼에서 손연재는 싸이 ‘강남스타일’ 말춤을 추어 화제가 되었었다. 손연재는 피날레 무대에서 다른 리듬체조 선수들과 함께 말춤을 선보여 관객들의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는데 그녀의 깜찍하고 발랄한 모습을 필자는 잊을 수가 없다. 일명 ‘손연재 스타일’로도 불리는 약 2주전의 그녀의 재기발랄한 모습은 작년 우리 곁을 떠난 전 롯데자이언츠의 신화적인 투수 최동원의 “한번 칠 테면 쳐봐라”라는 자신감 넘치는 눈매와 율동으로 다시 한 번 그녀의 존재를 각인 시켰다.
이번 사태가 어떤 식으로 해결이 되든 손연재가 더 이상 표류해서는 안 된다. 그녀의 열정이 소멸하게 해서는 더욱 안 된다. 대한체조협회는 선수를 이용해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매니지먼트사에서 이제 선수를 보호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그러나 그러한 명분으로 인해 손 연재선수가 입는 피해는 생각을 안 하는 것처럼 보인다. 선수보호는 피상적인 정책으로만 보호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 선수의 정신과 육체의 조화로운 환경을 우선시 해야 하는데도 말이다.
지금 손 연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이미 상처 입은 그녀의 정신적인 치유일 것이다. 이를 위해 대한체조협회와 소속사인 IB스포츠에게 촉구한다. 더 이상 손 연재선수가 표류하며 그 열정을 소멸시키게 하지 말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