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 측이 대표적인 진보경제학자로 분류되는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 영입에 적극 나서고 있다.
장 교수는 ‘보편적 복지’ 실현을 위한 ‘재벌과의 대타협’을 주장하고 있다. 이 방향은 박근혜 후보의 철학과 맥을 같이 한다.
반면 김종인 국민행복특위 위원장과 ‘경제민주화실천모임’(이하 경실모) 주도로 진행되던 재벌개혁 위주의 경제민주화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점에서 장 교수의 영입이 성사되면, 새누리당의 경제민주화 정책 방향이 어떻게 변할 지 주목된다.
특히 김 위원장이 사실상 경제민주화 정책의 ‘전권’을 갖고 있었던 만큼 장 교수의 등장은 그의 입지를 위협하기에 충분하다는 지적이다.
◇ 경제민주화 주도권 어디로 = 장 교수가 새누리당 대선캠프에 합류하게 되면 당이 추진하던 경제민주화의 방향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대선 공약의 최종결정권자였던 김 위원장은 재벌을 “탐욕스러운 존재”라고 부를 만큼 재벌개혁에 대한 의지가 강하다. 김 위원장은 경실모가 입법화를 준비 중인 재벌에 대한 처벌 강화, 신규 순환출자 금지, 금산분리 강화 방안 등에 대해 “함께 논의 하겠다”고 밝힌 것도 이를 증명해준다. 당 안팎에서 경실모의 법안을 두고 “너무 앞서 나가는 것 아니냐”는 평가가 나오지만 김 위원장은 수용가능성을 언급한 것이다.
반면 장 교수는 “경제민주화의 핵심은 재벌개혁이 아닌 보편적 복지”라는 입장이다. 보편적 복지를 실현하기 위해선 재벌개혁이 아닌 ‘재벌과의 대타협’이 필요하다는 시각이다.
김 위원장이 장 교수 영입설이 불거지자 “장 교수가 뭐 대단하다고 그러느냐”며 평가절하 한 것도 이런 시각의 차이 때문일 것이란 추측이다. 또 장 교수가 캠프에 들어오면 자신의 입지가 줄어들 것이란 위협도 느꼈을 수 있다. 한 친박근혜계 의원은 5일 “장 교수 영입을 시도한 것 자체가 김 위원장의 ‘경제민주화 독점’을 막고 균형 잡힌 시각으로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을 의도한 것 아니겠느냐”고 설명했다.
◇ 박근혜 “경제민주화, 재벌개혁 핵심 아니다” = 박 후보는 그동안 “경제민주화가 재벌개혁의 핵심은 아니다”라고 말해왔지만 김 위원장을 인선할 때부터 강도 높은 재벌개혁 의지를 드러낸 것이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박 후보 주변에선 “너무 나가면 기업이 위축될 우려가 있다”, “성장담론이 없다”는 조언을 내놓음으로써 김 위원장과의 시각 차이를 보였다. ‘장하준 카드’를 꺼내든 것도 이런 차원에서다.
특정인에 힘을 몰아주지 않고 권력의 균형을 맞추는 평소 박 후보의 인사 스타일이 그대로 반영된 결과이기도 하다.
캠프 합류 여부에 대한 선택은 장 교수가 하겠지만, 실제 합류 여부를 떠나 영입을 시도한 것 자체가 경제민주화의 모든 걸 김 위원장 혼자 결정할 순 없다는 박 후보의 의중을 나타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기도 한다.
이런 가운데 ‘경제민주화’라는 용어 자체를 부정해 온 이한구 원내대표까지 논의에 가세할 경우 당의 정책방향은 더욱 복잡해 질 수 있다. 이 원내대표는 성장론자다.
이 원내대표는 이날 당정협의에서 “정치판에서는 정체불명의 경제민주화니 포퓰리즘 경쟁을 하느라 정신이 없고 그래서 기업의 의욕이 떨어지고 국민이 불안해하고 있다”며 김 위원장과 경실모 등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그는 또 장 교수를 겨낭한 듯 “복지만 갖고 무엇을 하려 하지 말라”고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