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경필 새누리당 의원(경제민주화실천모임 대표)이 지난 5일 발의한 ‘경제민주화 3호법안(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 대해 재계 한 고위 관계자는 “정치권의 이같은 움직임으로 기업들의 경영 활동이 위축된다면 국민 경제 전체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이라며 하소연했다.
새누리당 경제민주화실천모임이 발의한 순환출자 규제법은 대기업의 순환출자 고리를 끊도록 유도한다는 게 핵심이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신규 순환출자는 전면 금지된다. 기존 순환출자 부분에 대해선 주식 의결권이 제한된다. 자산총액 5조원 이상의 기업집단(그룹) 15곳이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된다. 상호출자가 금지되는 63개 그룹 중 24%에 해당한다.
재계의 지배구조를 송두리째 흔들 수 있는 메가톤급 정책인 셈이다.
◇기존 순환출자 의결권 제한…사실상 지분 매각 = 지난달 10일 재계는 박근혜 전 위원장이 발언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박 전 위원장이 “순환출자의 경우 거품이 끼어 자기가 투자한 이상으로 의결권을 행사하는 불합리한 면이 있다”며 “바로잡아 나가야 되지 않겠나” 하고 강조했기 때문.
그는 “기존에 있는 순환출자는 현실성을 감안해서 기업의 판단에 맡기더라도 신규 순환출자 금지는 검토돼야 된다고 생각한다”고도 했다.
개정안은 박근혜 전 위원장의 ‘신규 순환출자 금지’의 입장보다 한발 더 나갔다. ‘기존 순환출자에 대해선 의결권을 제한한다’는 제9조의 2 제4항의 조항 때문이다. 의결권 행사 제한은 기존 순환출자 무력화와 그룹 해체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다는 게 재계의 우려다. 사실상 모든 순환출자를 해소해야 한다는 얘기다.
삼성, 현대차 등 순환출자 규정에 걸리는 대기업들이 계열사와의 출자고리를 끊고 지주회사로 전환하려면 수십조 원의 비용을 떠안아야 한다. 이는 결국 투자 위축으로 이어져 국민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크다.
경총 관계자는 “순환출자가 일부 결함이 있는 지배구조이지만 국내에서 기업 경영권 보호장치가 없는 상황에서 최선책”이라며 “적대적 인수합병 등으로 경영권 위협이 있는 기업 환경을 감안할 때 순환출자 구조를 폐기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밝혔다.
전경련 관계자는 “오너 경영이 갖고 있는 장점도 많다”며 “가족지배기업들은 장기적 안목에서 경영계획을 수립하고 신속한 의사결정, 위기상황에서의 구심점이 되는 등 다양한 장점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신규순환 출자 금지… 경영권 방어 ‘어쩌나’ = 신규 순환출자 금지에 따른 현실적 문제도 산적해 있다. 경영권 방어 목적으로 이뤄지는 신규 출자를 통한 대주주 지분 확대와 신사업 진출을 위한 계열사끼리의 자금 조달 등이 차질을 빚을 수 밖에 없기 때문.
지난 2003년 삼성카드는 카드대란으로 대규모 적자를 봤다. 이같은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유상증자를 실시했고, 대주주인 삼성전자는 5000억여원을 투입해 삼성카드를 살렸다.
그러나 신규 순환출자가 금지되면 앞으로 이 같은 증자는 불가능해진다. 삼성전자와 삼성카드는 순환출자 구조상에 있어서다.
사업 구조조정을 위한 계열사 간 지분 이동도 불가능하다.
전경련 관계자는 “과거 합법적으로 이뤄졌던 투자를 이제 와서 규제하겠다고 하면 한국의 법적, 정책적 신뢰가 곤두박질칠 것”이라고 말했다.
◇오너3세 경영권 승계도 난항 = 순환출자 금지는 오너 3세에 대한 경영권 승계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특히 현대차그룹은 심각한 상황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현대차그룹은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를 지녔다.
정의선 부회장의 경영권 확보 시나리오는 순환출자구조의 정점을 차지하는 것이었다. 현대차의 최대주주인 모비스를 통해 경영권을 확보하면 자연스럽게 나머지 계열사에 대한 경영권도 사실상 갖게 된다. 때문에 현대차그룹에게 순환출자구조의 유지는 승계구도 최대 관건이다.
현재 상황에서 순환출자구조가 유지되지 않는다면 정 부회장이 보유한 그룹 계열사 지분만으로는 그룹 전반을 장악하는데 한계에 봉착하게 된다.
결국 순환출자구조가 전면 금지되면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는 대변화를 맞게된다. 정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가 현대차그룹 전체가 아닌 일부 계열사에 국한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