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남유럽 재정위기, 2011년 8월 미국 신용등급 강등, 2012년 그리스·이탈리아·스페인 등 유럽 재정위기.
글로벌 금융시장을 수백 번은 들었다놨다 할 수 있는 이슈들이 지난 2년간 연달아 발생했다. 한 해가 지나기 무섭게 짙어지는 세계 경기의 불확실성 속에서 ‘억’ 단위의 자산을 보유한 강남 ‘슈퍼리치’의 투자 포트폴리오에는 어떤 변화가 일어났을까.
#삼성증권에서 자산관리를 받고있는 자영업자 A씨(53세·남)는 약 30억원을 보유하고 있다. A씨 포트폴리오의 눈에 띄는 변화는 주식형 자산을 26.8%에서 14.3%로 반이나 줄인 점이다. 대신 채권 등 안전자산은 기존 16.6%에서 36.5%로 2배 이상 급증했다. ELS, 헤지펀드 같은 대안 투자상품의 비중도 16.4%에서 26.3%로 늘었다.
불확실한 시장상황에 적절히 대응하고자 2011년 말부터 A씨의 포트폴리오에는 채권과 같은 안전형 자산의 비중이 증가했다. 물가채 및 브라질국채 등에 투자해 안정성과 수익성은 물론 절세혜택도 누릴 수 있도록 투자 포트폴리오가 재편된 것.
만기 10년의 물가채 표면금리는 1.5~2.75%로 국고채 10년물(표면금리 3.52%)에 비해 현저히 낮다. 그러나 물가채는 물가가 오르면 그만큼 원금을 올려주고 원금 인상분에 대해 이자소득세를 매기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이에 따라 현재와 같은 변동성 장세에서 ‘안정성+수익성+α’를 원하는 고액자산가들에게 물가채의 인기는 높다.
브라질국채도 헤알화 환율 약세가 지속되면서 약간 주춤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여전히 고액자산가들의 러브콜 1순위다. 실제 삼성증권의 브라질국채 판매액은 지난해 상반기 기준 월 4000억원 수준이었던 반면 올해는 월 1조원대로 그 규모가 수직 상승했다. 브라질의 높은 재정 안정성과 약 10%에 이르는 금리가 고액자산가들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남경욱 삼성증권 SNI강남파이낸스센터 팀장은 “지난해 8월부터 시작된 유럽 소버린 리스크(국가부도 위험)로 고액자산가들이 주식 투자에 큰 부담을 가지게 됐다”며 “최근 우리나라 10년물 국채 금리(3.52%)가 미국(1.7%), 일본(1% 내외)과 비교해 현저히 높아 안정적인 수익률이 기대되고 있어 고액자산가들의 채권 수요가 급증했다”고 설명했다.
남 팀장은 “물론 최근과 같이 물가가 하향 안정세를 나타내는 등 디플레이션(물가하락 속 경기침체)이 발생할 경우 물가채의 매력이 반감될 수 있다”며 “대선을 앞두고 물가 상승 억제를 위한 정부의 노력이 지속되고 있지만 대선 후 물가 상승 가능성이 높아 장기적인 관점에서 물가채의 안정성이 점쳐진다”고 판단했다.
#대우증권에 10억원 규모의 자산설계를 맡기고 있는 은퇴자 B씨(55세·여)의 1년 전 투자 포트폴리오에서는 자문형랩(40%), 주식형펀드(20%) 등이 투자 비중에서 60%를 차지했다. 나머지 자금은 지수형 ELS(20%), 수시입출금 단기특정금전신탁(MMT_R·20%)에 분배됐다. 1년 후 B씨의 투자 포트폴리오는 물가연동국채(30%), 산업금융채권(산금채·20%) 등의 채권과 폴리원알파성장형A(20%) 같은 자산배분형랩이 주요 투자대상으로 부상하며 안정성이 한층 강조됐다.
산금채는 국채와 같은 수준의 안정성은 물론 산업은행에서 결산손실이 나더라도 정부 지원으로 재무 건전성이 유지돼 리스크는 줄이고 수익률을 더욱 높인 특징이 있다. 자산배분형랩은 시장변화에 맞춰 주식 상장주식펀드(ETF) 등 위험자산과 국고채 상장주식펀드(ETF), 환매조건부채권(RP)등 안전자산을 교체하며 수익을 추구해 안정성을 크게 높였다.
정희선 KDB대우증권 영업부 PB팀장은 “지난해 초만해도 10년 짜리 상품은 수요가 적었지만 올해 들어 먼저 찾는 경우가 많아지는 등 장기채권이 투자 트렌드로 자리잡았다”며 “물가채 같은 경우 3~4월 내수금리 호조와 커진 시장 변동성으로 많이 편입한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에는 자문형랩의 자금 이탈과 투자자들의 안정 지향형 투자성향으로 자산배분형랩 등 안전성을 추구하는 투자가 주로 이뤄지고 있다”며 “유럽 위기가 장기화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보수적인 관점에서 향후 5~6년간 안정적 투자 포트폴리오에 대한 선호가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동양증권을 통해 10억원의 자산 재테크를 진행하고 있는 자영업자 C씨(56세·남)의 투자 포트폴리오는 주식(자문형랩·20%)과 채권(40%)의 비중이 절반으로 줄고 대신 월지급식 ELS 등의 대안상품의 비중이 10%에서 20%로 2배 늘었다.
C씨의 투자 포트폴리오 변화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지속되는 경기침체 탓에 자본 차익을 노린 투자보다는 임대료, 배당, 이자 등 꾸준한 현금흐름이 일어날 수 있는 투자가 진행된 것. 이에 따라 즉시연금, 월지급형 ELS와 같은 연금식 상품에 투자가 집중됐다. 또 종합과세 과표기준 하향조정 가능성과 맞물린 세무 니즈의 확대로 물가채, 즉시연금, 저축보험 등 절세상품에 대한 관심이 고조됐다.
최근 지수 하락으로 ELS 투자에 대한 고액자산가들의 요구가 증가하고 있다는 게 프라이빗 뱅커(PB)들의 의견이다. ELS는 주식 투자보다는 위험성이 작고 시장 금리보다는 기대수익률이 높아 중위험·중수익을 원하는 고액자산가들에게 꼭 맞는 투자 대상으로 부상하고 있다. 다만 전문가들은 손실확정구간(녹인)에 진입할 가능성이 높은 기초자산이 개별종목인 상품보다는 지수형을 선택하라고 조언한다. 또 원근보장형은 원금비보장형보다 목표 수익률이 낮게 책정되지만 유럽, 미국, 중국 등 주식 시장을 흔들 수 있는 위험 요소가 상존하는 현재 안정성에 초점을 맞추라고 강조한다.
정재훈 동양증권 W Prestige 강북센터 과장은 “정치권의 과세표준 하향 논의가 나오면서 절세상품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이 더욱 커졌다”며 “비과세 메리트로 최근 즉시연금과 물가채가 각광받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몇 십억에서 몇 백억의 고액 자산가들도 매월 생활비를 받는 형식의 즉시연금을 안정적인 노후생활을 위한 최적의 수단으로 생각하고 있다”며 “공시이율이 매달 적용돼 금리가 낮아지면 실수령액이 적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최저보증이율 등의 조건으로 충분히 헤지가 가능하다”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