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응급실 당직 전문의의 병원 밖 대기를 허용하도록 응급의료법 개정안을 수정한 것을 두고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응급실 비상진료체계 강화’라는 당초 법 개정 취지를 훼손했다는 이유에서다.
보건복지부와 대한병원협회는 최근 전문의와 3년차 이상 전공의(레지던트)의 응급실 당직을 의무화한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개정안’에서 관련 규정을 삭제키로 했다. 전공의들이 업무가 과중될 수 있다며 정부 방침에 반발해 파업까지 불사하겠다고 나서자 이들을 응급실 당직에서 제외한 것이다.
복지부는 대신 시행규칙 수정을 통해 당직 대상 전문의가 병원에 상주하지 않고 병원 밖에서 당직 대기(온콜·on-call)할 수 있도록 했다. 집에 있다가도 응급진료 호출이 있을 경우 당직 전문의가 응급실로 와서 진료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병원협회의 요구를 수용한 데 따른 조치다.
이에 대해 시민단체들은 분초를 다투는 응급환자의 생명권은 외면한 채 의사 입장만 일방적으로 수용했다고 비난하고 있다. 이들은 당직 전문의가 늘어나더라도 병원 내에 상주하지 않는다면 응급상황에 재빠르게 대응하지 못하는 기존 관행만 되풀이 될 것이라 우려한다.
조경애 건강세상네트워크 고문은 “병원과 의사에게 굴복해 온콜 당직을 인정한 복지부의 처사는 법률의 개정취지를 훼손함은 물론, 국민이 제대로 된 응급의료를 받을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며 “응급수술을 요하는 환자들에게 전문의가 없는 야간 응급센터는 지극히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조 고문은 또 “응급의료법 개정을 통해 앞으로 5년간 연간 2000억원이 넘는 응급의료기금이 지원되는 만큼 병원들은 당직의사 인력 확보에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비상호출체제하의 응급실 당직제 운영은 국회에서도 제동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민주통합당은 보건복지부가 확정한 응급의료법 시행규칙 개정안에 대해 국회 상임위원회가 구성되는 대로 문제를 제기하겠다는 입장이다. .
조원준 민주통합당 보건의료 전문위원은 “하위법령을 개정하는 과정에서 정부가 의료 공급자들의 편을 들어준 것은 ‘응급의료의 질 제고’라는 입법 취지를 무색케 한 처사”라며 “관련 의료 수가를 인상하더라도 의료의 질을 담보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