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왕의 세계]실적 부담에 동료가 원수로…‘조직내 갈등’이직 사유 1위

입력 2012-06-2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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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사의 비애

#전업 주부였던 김모(36)씨는 올초 A생명에서 보험설계사를 시작했다. 그는 3개월 간의 교육 과정보다 현장에서 보험설계사들과의 갈등이 더 힘들었다. 멘토인 보험설계사 5년차 선배는 업무를 봐주기 보다는 영업인맥 감추기에 급급했다. 적어도 김씨의 시각에는 그렇게 보였다. 보험설계사들 간의 정보공유는 친한 소수 집단을 통해서만 이뤄졌다. 빈틈을 파고 끼어들기 힘들었다는 얘기다.

#B생명에서 보험설계사로 일하는 3년차 이모(38)씨는 최근 중소형 보험사로 이직했다. 실적에 대한 압박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동료의 조언 때문이다. 그의 월소득은 10~15만원 가량 줄었지만 치열한 경쟁 구도에서 벗어나니 업무 만족도는 한결 나아졌다.

어느 직종이든 시작부터 쉬운 일은 없다. 일이 손에 길들고 마음에 깃들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 동안 참고 견뎌야 함은 물론이다.

보험설계사들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보험설계사에게는 일반 직장인과는 다른 고충이 있다. 그들이 일하는 것은 직장인과 다를게 없지만 특수고용직(골프장 캐디, 레미콘트럭 기사, 학습지 교사, 보험설계사)으로 분류된다는 점이다. 직장인보다는 사실상 자영업자로 해석된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개인 실적에 대한 부담감, 이로 인한 직장 상사·동료와의 갈등이 더 첨예하다는 것이 업계의 시각이다. 이씨 역시 그랬다. 그는 지난 2월 회사에서 측정하는 월평균 모집액 순위가 20단계 정도 떨어졌다.

이씨는 “실적이 떨어지니 팀장은 다그쳤지만 팀원들은 남몰래 즐거워하는 듯했다”고 털어놨다.

보험연구원이 최근 생명보험설계사 1080명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이직경험자 또는 이직의향자의 이직사유’로 ‘조직 내 인간적 갈등’이 16.2%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회사별로는 중소형생보사가 20.1%로 가장 높았다. 대형생보사는 14.2%, 외자계생보사는 14.6%를 각각 기록했다.

‘실적에 대한 부담감’은 14.8%로 인간적 갈등의 뒤를 이었다. 실적 부담감은 대형생보사가 17.3%로 가장 높았다. 중소형손보사는 9.7%, 외자계는 17.2%를 각각 차지했다.

실적에 대한 부담감과 그로 인한 인간 갈등이 보험설계사의 가장 큰 애로사항인 셈이다.

생명보험설계사의 이직 후 만족도로는 ‘인간적 갈등 해소 측면’이 3.4점(5점 만점)으로 ‘경제적 소득 측면’ 3.2점보다 앞섰다. 이 같은 양상은 대형, 중소형, 외자계 생명사 모두에 해당됐다. 경제적 소득보다는 인간적 갈등이 직업을 영위하는데 더 중요한 측면이란 해석이 가능하다.

김씨는 “보험설계사를 시작하고 1년을 버티면 10년을 버틸 수 있다는 말이 있던데 업무 협조가 어려운 취약한 인간 관계 고리를 고려하면 이해가 간다”고 말했다.

보험설계사들은 개인사업자처럼 활동한다. 실적이 부진하다고 책임을 회사에 돌리기 어렵다. 하나부터 열까지 자신의 책임이란 얘기다. 그만큼 심적인 부담감은 커지고 영업력으로 살아남아야 하는 생존경쟁은 치열해진다.

더욱이 보험설계사들은 무직이었다가 생계 때문에 뛰어든 이들이 대부분이다. 보험연구원의 자료에 따르면 보험설계사들 중 53.3~69.5%(대형, 중소형 생보사에 따른 차이)가 생계형이다. 종사 전 직업으로는 주부 및 무직이 27.1%로 가장 높다. 생계를 위해 일을 시작하다 보니 그만두기는 어려운 이중고에 갖힌 셈이다.

안철경 보험연구원 금융정책실장은 “전체적으로 생명보험설계사와 독립법인대리점(GA)설계사 모두 만족도 수준이 그리 높지 못하다”고 평가했다.

안 실장은 “보험설계사의 잦은 이직을 방지하고 충성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생보사와 독립대리점, 특히 홈쇼핑대리점과 공제가 설계사의 만족도를 높이는데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보험설계사의 만족도 제고를 위해서는 수당체계를 통한 보수의 상향조정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그러나 단순히 직접적 수단보다는 경쟁력 있는 상품개발을 통한 영업 용이성 제고, 보험설계사와 관련된 양성제도, 교육지원, 복지지원, 근무환경 개선 등과 같은 간접적 만족도를 높이는 게 오히려 효율적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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