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남자, 컬러 구두를 신다

입력 2012-06-12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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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형석 EFC 상품기획팀장

▲장형석 EFC(구 에스콰이아) 상품기획 팀장
날이 선 양복을 입고, 세월에 조금은 헤졌지만, 꼼꼼히 구두약을 발라 은은하게 빛나던 검은 구두를 신은 아버지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가장으로서의 무거운 발걸음을 항상 함께해준 검정 구두는 아버지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마치 보이지 않는 끈으로 묶여 있는 연결고리와 같았다. 나와 같은 향수에 젖은 이들이 많아서일까? 한국 사회에는 유난히 검은 구두를 고집하는 남성들이 많았다.

과거에 고급 가죽은 가죽 본연의 맛을 살린 갈색 구두로 제작하고, 비교적 품질이 떨어지는 가죽은 검은색으로 염색하여 검정 구두로 제작하였다.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좋은 가죽을 구하기도 어려울뿐더러 가죽을 가공하는 방법도 발달하지 않아 갈색을 비롯한 유색 구두를 제조하고 관리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따라서 대부분 남성들은 검은 구두를 신고 다녔고 ‘정장에는 검은 구두를 신는다’라는 암묵적인 공식도 생긴 것 같다.

하지만 요즘 길거리를 걷다 보면 마치 유럽 신사와 같은 정장 차림을 한 남성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갈색 구두뿐이랴. 컬러창을 사용하거나 다채로운 색상의 가죽을 섞어 포인트를 준 구두들 역시 눈에 띈다. 에스콰이아의 남성 구두 판매량의 추이를 살펴봐도 2009년까지도 전체 남성화 스타일의 70%가 검은 컬러의 구두가 차지했던 반면 작년엔 46%로 줄고 유색 구두가 54%를 차지해 구두 선호도가 확연히 변화하고 있는 것 같다.

블랙·네이비 색상의 정장에 오직 넥타이로 포인트를 주었던 과거와 달리 자율복장, 노타이 등이 확산되면서 남성들은 포인트를 줄 수 있는 다른 요소를 찾았다. 그리고 세련된 신사의 느낌을 주는 브라운 계통의 구두를 신기 시작했다. 남성 패션에 영향을 주고 있는 클래식 무드도 무시할 수 없다. 클래식한 정장과 소품들을 사용하면서 유색 구두도 자연스럽게 선택한 것. 비즈니스 캐주얼의 유행에도 영향을 받았다. 이렇게 남성들의 변화에 다양한 이유를 붙이고 있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이제 한국 남자들이 검고 어두운 컬러를 벗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흔들리는 갈대처럼 시시각각 변화하는 패션 트렌드는 좀처럼 예상하기가 힘들다. 몇 년 후, 길거리를 수놓은 유색의 구두들이 다시 발자취를 감추고 검은 구두가 거리를 매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재로써 나는 이러한 변화에 박수를 쳐주고 싶다. 다양한 컬러의 구두들로 개성을 표현하고, 세련되게 포인트를 주기에도 제격인 더러 경기 지표가 어두운 요즘 마치 장례식장을 향하는 듯한 무거운 느낌의 검은 구두보다는 가볍고 화사한 유색의 구두가 젊은이들의 발걸음과 미래를 좀 더 경쾌하고 밝게 만들어 줄 수 있기를 바라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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