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은행연합회를 바라보는 시중은행들의 시선은 곱지만은 않다. 은행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보다는 정부의 눈치를 살핀다는 이유에서다. 아래에서부터 나오는 은행의 목소리를 취합하지 않고 위에서 내려오는 정부의 입장을 은행에 투영하는 정부 산하 기관이나 마찬가지라는 지적이다.
은행연합회가 이 같은 비판을 받는 데는 역대 회장들과도 연관이 있다. 신동규(10대), 유지창(9대), 류시열(7대), 이동호(6대) 등 역대 회장들 대부분이 재무부와 재정경제부를 거친 관료 출신이다.
A은행의 부행장은 “대게 낙하산 인사들이 그렇듯 관료 출신들은 정부에 날을 세우기보다는 정부 입장을 은행에 전달하는 창구 역할 정도만 했다”고 비판했다.
B은행의 자금담당 부문 관계자는 “은행연합회가 은행들의 입장을 대변해줘야 하지만 실상 발언권이 강력하지 않다”며 “연합회가 정부기관이나 정부의 지분으로 이뤄진 곳은 아니지만 은행들의 입장을 고스란히 전달하기에는 부담이 따른다”고 지적했다.
C은행 관계자는 “당국에서 은행들에게 투자해라는 지시을 내렸을 때 은행들이 ‘NO’라고 해도 연합회에 의견이 반영되기 힘들다”며 “결론을 보면 금융당국이 제시한 방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말했다.
은행연합회가 사원은행보다 연합회 자체만 생각한다는 비판도 있다. 은행연합회장 자리가 더 좋은 보직으로 옮기기 위한 정거장 정도로 여겨진 부작용이다.
하지만 올 초 박병원 회장이 취임한 이후 변화의 흐름이 조심스레 감지되고 있다. 박 회장이 정부를 겨냥해 강도 높은 발언을 하며 사원은행과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양쪽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 내고 있다.
박 회장은 최근 은행의 개점시간을 9시에서 9시30분으로 늦추자는 금융노조의 제안과 관련 “제3자가 간섭하지 말라”고 밝혔다.
박 회장 발언은 금융당국을 겨냥했다. 그는 최근 기자들에게 “치열한 경쟁을 하는 은행들은 고객이 원하는 것을 해주고 싶을 것이다. 은행들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금융감독원에는 관련 규정이 없는데 남의 일에 감 놔라 대추 놔라 한다”고 강조했다.
과거 금융당국이 사실상의 월권 행위를 했다고 박 회장은 해석한 것이다. 그동안 금융당국의 의중에 끌려갔던 은행연합회의 면모와는 달랐다. 성낙조 금융노조 대변인은 “과거에는 은행연합회에서 할 일을 금융위원회, 금감원이 담당했다”며 “은행연합회장이 금융당국에 개입하지 말라고 당부한 사례는 거의 처음이다”고 말했다.
성 대변인은 “은행 개점시간 연장 문제를 노조와 은행연합회가 논의할 문제로 못 박은 것은 긍정적이다”고 평가했다.
금융노조와 은행연합회는 대학생 학자금 무이자 대출 사안에 대해서도 의견이 일치해 논의를 진전시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