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 건설사의 한 임원은 건설사 워크아웃의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이 기업회생 지원제도임에도 불구하고 신규 투자는 뒷전이고 누가 채권 회수가 빠른가 경쟁이나 하듯이 대출금 회수에 혈안이 돼 있다는 얘기다.
워크아웃에 돌입한지 3년이 지났지만 졸업은 커녕 법정관리를 신청한 풍림산업의 다음 순서는 누구냐는 얘기가 벌써부터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건설업계는 워크아웃 건설사 가운데 주택 비중이 높고, 5,6월 만기도래하는 프로젝트 파이낸싱(PF)대출이 많은 회사들이 결국 법정관리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이에 해당하는 건설사 10여개 회사가 거론되고 있다.
이달 저축은행 구조조정과 맞물린 이른바‘건설사 6월 부도설’도 이같은 배경을 근거로 하고 있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금융당국도‘워치 리스트’를 작성해 건설사들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금감원의‘워치 리스트’에는 전체 매출중 주택 비중이 50% 이상이거나, 전체 차입금에서 저축은행 비중이 25%를 웃돌고, PF 보증액이 자기자본의 200%를 넘는 기업 가운데 2012년 결산 기준 재무안전성과 수익성 악화가 우려되는 업체가 대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고려개발, 진흥기업, 우림건설 등 현재 워크아웃이 진행중인 건설사 중 8개 업체는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가장 많은 적자를 낸 기업은 대림산업 계열사인 고려개발로 지난해에만 2350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고려개발은 용인 흥덕지구 아파트 사업과 대손상각비 증가 등으로 인해 적자폭이 커진 것으로 알려졌다.
효성 계열사인 진흥기업은 2127억원의 손실을 봤고, 우림건설 1749억원, 남광토건 1596억원, 벽산건설 840억원, 중앙건설 603억원, 금호산업 495억원, 삼호 463억원의 적자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위기 이후 건설사 시공능력 평가액 순위 100위권내 워크아웃에 들어간 건설사 중 신동아건설과 동문건설을 제외한 나머지 건설사 대부분이 적자에 허덕이고 있는 셈이다.
이들 건설사의 대규모 적자 원인은 주택사업 때문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5년 가까이 주택시장이 침체를 겪어면서 주택사업을 주로 해온 이들 건설사들의 자금난이 심화된 것이다.
주택시장이 위축된 가운데 신규 수주는 끊기고, PF대출 잔액에 발목이 잡혀 사면 초과에 빠진 것이다. 게다가 금융권에서는 이들 건설사에 대한 지원이 밑빠진 독에 물 붙기라는 인식이 확산돼 추가적인 자금지원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어 퇴출에 대한 공포감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중견 건설사 관계자는“대형 건설사라면 해외 플랜트나 토목건축 사업으로 국내주택사업의 부진을 만회할 수 있지만 주택중심의 중형 건설사는 사정이 다르다”며 “신규 사업조차 할 수 없어 법정관리를 앉아서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이 관계자는“그나마 워크아웃 건설사들이 수주하는 것도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내놓은 저가 위주의 공사물량이 대부분이다. 이익을 남기기가 하늘에 별따기”라고 전했다.
흑자를 낸 워크아웃 기업이라 해도 안심할 단계가 아니라는 분석이다. 주택경기 침체의 골이 깊다보니 신규 사업장 하나만 타격을 입어도 생존 여부가 불투명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바로 워크아웃 기업인 S건설과 D건설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대표적인 미분양 지역인 고양시 식사지구에 사업지를 가지고 있는 S건설은 서울 강동구 천호동에 주상복합아파트 분양에 나선다. 오는 6월 말에는 경기도 화성시 봉담지구에 669가구 아파트도 분양할 예정이지만, 미분양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분석이다. 지방 분양 시장은 곳곳에서 활기를 띠고 있으나 수도권 시장은 여전히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D건설도 여전히 긴장감이 감돈다. 최근 분양시장 상승세가 한 풀 꺾인 부산에서 3160가구 매머드급 대단지인 백양산 동문굿모닝힐을 분양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분양에 성공할 경우 워크아웃 조기졸업도 가능하지만, 자칫 실패할 경우 자금난이 심화될 수 있다는 게 업계의 판단이다. 중견 건설사 관계자는“부산 분양 시장이 최근 예전만 못하다는 얘기가 많다. 입지에 따라 분양 성패가 좌우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견건설사 한 관계자는 “돈 들어올 곳은 없고, 월급도 몇 달째 못주고 있다보니 더 이상 견디기 힘든 상황까지 간 건설사들이 여럿 있다”며 “게다가 추가적인 자금 중단이 지원된 건설사들은 극단의 선택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법정관리 선택도 고민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