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두산 이사회 의장에 선임됨으로써 그룹경영을 총괄하게 된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은 재벌가 로열패밀리 가운데 일반인과 가장 친숙한 사람으로 꼽힌다. 얼리어답터로 알려진 그는 자택과 집무실을 언론에 공개하는가 하면 13만여 팔로워를 보유한 트위터 마니아답게 일상생활도 스스럼없이 드러낸다. 경박하지 않느냐는 말을 듣기도 하지만 그건 사적 영역일 뿐이다. 그룹경영에서 박 회장은 전혀 가볍지 않은 무게를 보여주었다.
박 회장은 수입 소비재가 대부분이었던 두산그룹의 100년 역사를 바꾸어놓은 핵심 주역이다. 외환위기를 계기로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한 두산은 그룹을 대표했던 식음료·프랜차이즈·의류 등의 사업을 매각하고 대신 중공업·건설·기계 중심의 기업으로 재편했다.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 고려산업개발(현 두산건설), 대우종합기계(현 두산인프라코어), 연합캐피탈(현 두산캐피탈), 영국 미쯔이밥콕(현 두산밥콕), 밥캣을 포함한 미국 잉거솔랜드 3개 사업 부문 등을 잇달아 인수하며 그룹의 모양새를 바꿔나간 것이다. 이후에도 BNG증권중개, 노르웨이 목시, 체코 스코다 파워 등 두산은 마치 포식자처럼 국내외 M&A에 적극적이었다.
박용만 회장은 이를 진두지휘한 주인공이다. 전혀 생소한 사업으로 판을 너무 크게 벌인다는 시장의 평가도 있었지만 두산그룹은 보란 듯이 변신에 성공했다.
현재 두산의 외형은 변신 이전인 2000년에 비해 기업가치는 23배 뛰었고 매출은 약 10배가 늘어났다. 그 결과 두산그룹은 ‘구조조정의 모범’, ‘변화와 혁신의 전도사’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 박 회장은 ‘구조조정 전문가’, ‘M&A의 귀재’, ‘Mr. M&A’라는 찬사를 듣고 있다.
이와 관련 박 회장은 두산을 변화시킨 것은 ‘위기의식’이라고 밝힌 바 있다. 위기를 감지하고 생존을 위해 변신을 시도한 것이라는 의미다.
박 회장은 1955년 2월5일 서울에서 출생했다. 올해로 만 57세. 경기고와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보스턴대학 경영대학원에서 MBA(경영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직장생활은 1977년 외환은행에서 시작했다. 이후 두산그룹 계열사를 거쳐 1995년 두산그룹 기획조정실장으로 경영 전면에 나섰다. (주)두산 부회장, 두산인프라코어 부회장·회장, 두산중공업 부회장·회장 등을 맡아 두산그룹의 경영현황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다.
◇ 박용만
1955년 2월 5일 서울생
1978년 서울대학교 경영학 학사
1982년 보스턴대학교 경영대학원 석사
1977~1979 한국외환은행
1983 두산건설 뉴욕지사
1990 두산음료 이사, 두산식품 부장, 동양맥주 차장
1994 두산음료 전무, 그룹기획조정실 부실장
1995 두산동아 부사장
1995 두산그룹 기획조정실 실장
1996 OB맥주 부사장
1998 두산 전략기획본부 대표이사
2000~ 한국 스페인 경제협력위원회 위원장
2000 네오플럭스 회장
2001 하나은행 사외이사
2002~2005 두산 대표이사 사장
2003 이화여자대학교 경영대학 겸임교수
2005 두산 대표이사 부회장
2005 두산그룹 부회장
2005 두산인프라코어 대표이사 부회장
2007~ 두산인프라코어 대표이사 회장
2009~ 두산 대표이사 회장
2009 서울상공회의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