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남성은 짧은 머리에 선글라스를 끼고, 폴로 티셔츠와 면바지 차림으로 대회장 곳곳을 돌아다닌다. 수행원도 없다. 클럽 하우스 선수 식당에서 선수들과 이야기하는 모습을 봤는데, 잠시 후에 돌아보면 어느새 18번 홀 근처에서 서성인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는 1번 홀 티박스 갤러리 스탠스에 앉아 있다. 선수들을 만나면 먼저 다가가서 인사하고, 경기를 마친 선수에게는 어김없이 다가가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선수들도 스스럼없이 그와 대화를 나누고 어디에서든 불만을 제기하고 토론한다.
바로 현 LPGA투어 회장인 마이크 완(Mike Whan·47)이다. LPGA 투어 메이저대회 크래프트 나비스코 챔피언십이 열리는 미국 캘리포니아 란초 미라지 미션힐스CC 디나쇼어 토너먼트 코스에서 프리미엄 석간경제신문 이투데이 최민석 객원기자가 단독 인터뷰를 가졌다.
마이크 완 회장은 미국에선 ‘턴 어라운드 스페셜리스트’로 불린다. 이는 가치가 완전히 하락한 기업을 끌어올려 최고의 자리에 놓는 전문가를 뜻하는 말이다. 완 회장은 스포츠 업계에서 경력을 쌓았다. 윌슨사 스포츠마케팅 디렉터, 테일러메이드 북미지역 총괄 마케팅 이사를 거쳐 아이스하키 업체인 미션 아이테크하키의 최고경영자(CEO)로 경력을 쌓았다. 완 회장은 당시 가치가 하락한 회사들을 모두 최고의 자리에 올려놓았다.
2010년부터 정식으로 투어를 맡은 이래, LPGA투어는 23개까지 감소했던 대회 수를 3월 말 현재 29개로 늘렸다. 외형적으로도 완전히 정상적인 궤도에 올랐지만 아직도 협상중인 대회가 있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며 지속적인 발전을 꾀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기까지 완 회장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위기의 LPGA투어를 구해 냈을까?
무엇보다 그는 LPGA투어의 미래, 대회를 만드는 방식을 다른 시각에서 접근했다. 기존과 가장 큰 차이를 보인 것은 바로 상대방의 입장에서 투어를 바라보는 것이었다. 그는 절대로 ‘스폰서’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다만 ‘파트너’만 있을 뿐이다.
LPGA투어의 한국인 직원인 변진형 씨는 “회장은 어떤 자리에서도 ‘스폰서’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직원들이 그 말을 하면 그 즉시 ‘파트너’라고 정정해 줍다”라고 말한다. 이런 시각 차이는 대회를 후원하는 회사에서 대회를 함께 만들어가는 회사로서의 의미 변화를 부여했다.
함께 만들어간다는 자세는 협상 테이블에서도 잘 나타났다. 그는 항상 직원들에게 “가장 좋은 협상은 양쪽이 뭔가 약간의 아쉬운 여지를 남겨 두었을 때 만들어진다(The best deal is when both side left something on the table)”고 강조했다. 파트너가 제시한 안에서 더 얻어내지 말고, 이쪽에서 뭔가를 제시하면서 상대방이 양보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라는 것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그 편이 훨씬 오랫동안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결국엔 많은 것을 얻게 된다는 점을 알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LPGA 투어는 벌어들이는 돈도 많지만 쓰는 돈도 적지 않다. 뭔가 새로운 아이디어가 생기면 대회 파트너에게서 얻어내기보다는 협회가 일정부분 투자하고, 파트너 역시 참가하는 식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완 회장은 협회란 비영리 단체여서 당장의 이익보다는 더 큰 관점에서 여성 골프계를 키울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역시 눈앞의 성과를 위해 무리수를 두는 것보다 당장의 작은 희생으로 더 큰 이익을 창출하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의 경영 철학은 한 마디로 ‘보살핌(Care)’이다. 스스로를, 서로를, 공동체를 보듬는 것이 발전을 이룰 수 있다고 믿는다. 이런 생각은 스스로를 희생하고, 참여하는 정신이 없다면 매우 어렵다.
하지만 그는 특유의 부지런함과 설득으로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킨다. 완 회장은 항상 부지런히 움직이면서 사람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고, 가장 낮은 곳에서 누군가를 위해 대신 할 수 있는 일을 찾는다. 단적인 예가 최근에 캐디 미팅에서 나왔던 얘기다.
지난주 기아 클래식 주간 화요일에 완 회장은 투어 캐디를 모아 재미있는 주문을 했다. 같이 플레이 한 프로암 참가자에게 감사 카드를 보내게 하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는데, 만일 선수가 겨를이 없어 명함을 받지 못했다면 캐디에게 대신 받아 줄 것을 주문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캐디에게 대신 쓰라고 한 것도 아니었다. 카드만 받아서 주면, 자신이 직접 선수의 이름으로 감사 카드를 보내겠다는 것.
이는 선수가 투어를 위해 할 일을 명확하게 규정하고, 캐디가 단순히 선수에 종속된 사람이 아닌 LPGA투어의 당당한 일원이라는 인식을 심는 계기가 된다. 또 회장이 가장 낮은 곳에서 일하겠다고 선언함으로써 완곡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참여를 이끌어 낸 것이다.
회장의 입장을 존중해 서면으로 인터뷰할 것을 제안했으나, 그는 직원을 통해 전화번호를 남겼고, 직접 통화를 통해 인터뷰할 수 있었다. 이제까지 봐왔던 ‘회장’이라는 이미지와는 확실히 다른 모습이었다.
선수들도 이젠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지난 1년 동안 낮은 곳에서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인 결과다.
완 회장은 플레이어 미팅 자리에서 단상을 없앴다. 예전에는 회장이 높은 단 위에 올라 연설을 하는 식으로 회의가 진행됐다고 한다. 하지만 완 회장은 선수와 같은 눈높이에 서서 소탈한 방식으로 대화를 이끈다. 이런 모습에서 선수들은 회장에 대한 신뢰를 높일 수 있었다. 많은 선수들을 만나 회장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한결같이 입을 모아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다’고 답한 것을 보면 그의 진심이 통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집단 안에서의 비밀은 바로 이러한 신뢰에서 생겨난다. 완 회장은 미팅에서 LPGA 직원들이 깜짝깜짝 놀랄 정도로 현재 일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밝힌다. 그의 생각은 단순하고 명쾌하다. 어차피 누설될 기밀이라면 자신의 입으로 말 하겠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투어의 스케쥴이나 앞으로 생길 대회들이 미디어를 통해 선수에게 흘러 들어가는 일이 많았다.
완 회장은 이런 기밀 누설이 결국 큰 손해로 다가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내부적으로는 비밀을 갖지 않고 모든 것을 말한다. 다만, 이 일이 외부로 나가게 됐을 때의 위험성에 대해 알려주고, 선수들에게 이해를 구한다. 처음에는 그래도 비밀이 발설되는 일이 있었지만, 지금은 선수들끼리 서로 입단속을 하고 있다. 그가 말한 것을 반드시 지키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를 눈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선수들이 성공과 돈을 움켜쥐기 위해 투어에 잠시 머무는 존재가 아닌 진짜 주인이라는 의식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모든 것이 완 회장이 투어를 경영하면서 생긴 결과이며 그가 이룬 가장 큰 성과 중 하나이다.
이젠 완 회장이 하는 일에 대해 가타부타 말하는 선수는 없다. 불만을 말하기보다는 의견을 제시하게 되었고, 남에게 미루기보다 스스로 알아서 하게 되었다. 그게 어려울 때는 항상 회장이 옆에서 도와주고 있다.
지난 기아 클래식 프로암 파티 때 하나금융그룹 소속의 박희영에게 “하나은행의 김정태 행장이 하나금융그룹의 회장으로 취임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축하 인사를 당연히 하고 싶을 텐데, 말하기 쑥쓰러우면 내가 도와줄테니 둘이서 같이 하자”고 제안을 했다고 한다. 억지로 이끌지 않고 자연스럽게 참여를 유도한 것이다.
이렇듯 완 회장은 1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많은 것을 일궈냈다. 가장 큰 성과는 상생의 묘리를 선수, 협회 직원, 캐디, 파트너에게 까지 전파했다는 점이다. 이 점이 지금 LPGA투어가 변화하면서 성장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무엇이 다른지 보고 확인하라(See why it’s different out here!)’
LPGA투어의 새로운 캐치 프레이즈다. 왜 그리고 어떤 점이 다른지 직접 눈으로 확인하라는 뜻이다. 그 동안의 LPGA투어가 아닌 새로운 LPGA투어를 만들겠다는 자세이며 각오다. 그리고 그 선봉엔 마이크 완 LPGA투어 회장이 서 있다.
캘리포니아 란초 미라지(미국)=최민석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