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수많은 도시에 나의 발길이 닿았다는 것에 우쭐했던 때가 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여행의 횟수가 늘어갈수록 표면적인 것만 보고 ‘음, 중국은 원래 그래.’ 이렇게 속단해 버린 일은 없는지, 나는 이 많은 여행을 통해서 무엇을 배웠는가, 스스로에게 되묻게 된다. 그럴수록 많이는 가보았는데 제대로 소화시키지 못한 여행이 더 많은 것 같아 부끄럽다.
이후 중국의 역대 왕조들은 북방 이민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끊임없이 성벽을 쌓았다. 방어용으로. 지도상의 연장 길이만 2700km에 이른다. 중간 중간에 갈려져 나온 지선까지 전부 합치면 6300km에 이른다니, 실로 어마어마한 길이다.
만리장성에 다녀온 사람이라면 “아, 산의 능선 위에 세워진 성벽이 진짜 엄청 나더라.” 하고 감탄사를 날렸을 거다. 그런데 정작 자신이 다녀온 만리장성이 어느 지역에 어떤 이름의 장성인지까지 기억하는 사람은 적을지도 모르겠다. “뭐, 만리장성이면 다 같은 만리장성이지.”하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야말로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다.
만리장성의 동쪽 기점, 산하이관(山海關)의 라오룽터우(老龍頭)를 보자. ‘용의 머리’란 뜻의 라오룽터우는 중국의 동해 바다인 보하이(渤海)로 20m 정도 뻗어 들어간 위치에서 시작된다. 바다와 만리장성이 만나는 지점이 정말 승천하는 용의 머리처럼 생겼다.
물 위에 세워진 장성은 또 있다. 랴오닝과 허베이성의 분기점에 위치한 구문구(九門口)장성이다. 언뜻 보면 만리장성이 물 위에 둥둥 떠 있는 격이다. 물 위에 아홉 개의 관문이 다리처럼 설치되어 있고 관문마다 아치형 통로를 뚫어 물이 흐를 수 있게 했다. 이 관문 위를 걸어 산으로 뻗은 장성에 오르는 것은, 베이징 인근 여행객으로 북적이는 장성들과 견줄 수 없는 즐거움이 있다.
중국 만리장성을 대표하는 베이징의 바다링(八達嶺)장성은 1년 365일 인파로 북적인다. 줄서서 기다리며 힘들게 바다링에 오른 사람이라면 세련된 장성의 모습이 실망스러울지도 모른다. 마치 성형미인을 보는 것 같아서. 보수를 많이 하여 옛 모습이 많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바다링은 역사적으로 상당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 전체 길이는 3741m로 명나라 장성을 대표한다. 뿐만 아니라, 팔달령은 베이징으로 들어오는 만리장성의 마지막 관문으로, 베이징 방어에 있어 ‘최후의 보루’였다.
6300km의 만리장성은 간쑤성 자위관에서 마침표를 찍는다. 자위관은 명실상부 만리장성의 서쪽 끝으로, 실크로드를 걷는 사신과 사인들이라면 반드시 지났던 관성이 남아 있다. 명나라 홍무제 때 건설된 이 자위관 관성은 500년간 제국의 국경으로서 역할을 수행했다.
본래 '방어적' 성격이 짙은 만리장성은 역대 왕조들의 성격에 따라 보수와 정비에 쏟는 정성도 달랐다고 한다. 북방 경영에 열심이었던 당나라, 만주에서 일어나 만리장성 너머까지 다스렸던 청나라 때는 그 중요성이 떨어져 개보수 작업이 거의 진행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처럼 만리장성은 중국의 역사와 당시 주변 국가의 정세를 이해하는 한 줄기다. 물론 가벼운 트레킹으로도 만리장성 여행은 즐겁다. 베이징 인근에 원형이 잘 보존된 진산링, 등산과 트레킹이 어울리는 스마타이, 장성의 경관과 산세가 빼어난 무텐위, 세 곳이 걷기여행으로 안성맞춤이다.
/여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