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야당 민주당이 단 두 사람에게 휘둘리고 있다. 정동영 최고위원은 한미FTA를 비롯해 노동·복지 현안에 있어 당 정체성을 쥐락펴락하고 있다. 박지원 의원은 지도부가 천명한 야권통합에 기득권의 이해를 등에 업고 반발한 대표주자다.
우연찮게 두 사람 모두 복당파다. 지난 대선 때 민주당의 전신인 대통합민주신당 후보였던 정 최고위원은 2009년 4.29 재보선에 출마키 위해 탈당을 감행했다. 대선주자가 당의 공천결정에 반발, 텃밭(전북 전주 덕진)으로 뛰어가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이후 10개월 만에 친정으로 복귀하면서 그가 내걸었던 첫마디는 ‘백의종군’이었다.
그는 “전적으로 제 부덕의 소치다. 깊이 사과드린다”며 “당에 너무나 많은 빚을 진 사람으로, 그 빚을 갚기 위해 어떤 역할도 마다하지 않겠다. 낮은 자세로 백의종군하며 헌신하겠다”고 밝혔다.
그의 ‘부채의식’은 당내 합리적 온건파를 일축하는 초강경 ‘헌신’으로 귀결됐다. 밑바탕은 단연 압도적인 조직력이었다. 일각에선 그를 가리켜 ‘변화’라 부르고, 또 다른 일각에선 ‘변신’으로 지칭한다.
또 다른 한 사람, 박지원 의원 역시 지난 18대 총선 당시 당의 공천결정에 불복, 탈당과 함께 무소속 출마를 감행했다. 출마한 지역구가 전남 목포였기에 DJ의 후광은 그를 어렵사리 재선 반열에 올렸다. DJ의 영원한 비서실장으로 불렸던 그였기에 가능했다.
4개월이 지난 뒤 그는 김영록 의원과 함께 민주당 품으로 돌아왔다. 그 또한 “제가 가진 경험을 되살려 당의 발전을 위해 기여할 것을 당원과 국민 앞에 약속드린다”고 했다. 방점은 역시나 ‘기여’였다.
경험이 출중하기 때문이었을까. 그는 앞선 정보력으로 고비마다 한나라당을 굴복시켰다. 원내대표를 지내며 대여투쟁을 이끌기도 했다. 이제 그는 ‘경험’을 바탕으로 ‘당 대표’로 기여할 각오다. 나아가 포스트 DJ를 꿈꿀 수 있다. 거칠 것 없던 유력주자가 통합의 갈림길에서 반발할 수밖에 없는 이유기도 하다.
일각에선 그를 가리켜 ‘제갈량’이라 부르고, 또 다른 일각에선 ‘여우’로 폄훼한다.
묘하게도 두 사람은 한미FTA와 예산안을 연계한 장외투쟁과 야권통합에 대해선 각각 의견을 달리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