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 땅 너른 들녘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야트막한 언덕, 월출산과 은적산 사이에 자리 잡은 월인당은 한국인의 DNA에 새겨진 ‘구들장의 추억’을 되살려 주는 소박한 한옥민박이다. 내력 있는 종택도, 유서 깊은 고택도 아니건만 주말마다 예약이 밀려드는 까닭은 황토 구들방에 등 지지는 그 맛이 각별해서다.
모정마을 토박이인 김창오 씨가 월인당을 지은 것은 5년 전이다. 구례 사성암을 지은 김경학 대목과 강진 만덕산 기슭의 다산초당을 지었던 이춘흠 도편수가 1년 3개월간 함께 공을 들였다. 규모는 단출하다. 방 세 칸에 두 칸짜리 대청, 누마루와 툇마루가 전부다. 담장은 대나무 울타리로 대신하고, 넓은 안마당엔 잔디를 깔았다.
월인당 세 개의 방은 저마다 특징이 있다. 마을 앞 너른 들과 월출산이 가장 잘 보이는 ‘들녘’ 방은 측면 툇마루를 단독으로 사용할 수 있다. 월인당 현판이 걸린 정중앙 ‘초승달’ 방에서는 마당이 한눈에 들어온다. 서쪽 끝 ‘산노을’ 방은 누마루와 바로 연결되는 구조라 가장 인기가 많다. 방마다 욕실과 싱크대, 냉장고를 갖춰 먹고 자고 씻는 데 아무런 불편함이 없다.
집을 지을 때 툇마루와 누마루는 특별히 공을 많이 들였다. 툇마루는 집안으로 들어서는 첫 관문이자 집 안과 밖을 연결해 주는 공간이다. 꼬마 손님들에게는 왕복 달리기를 할 수 있는 놀이터이기도 하다. 삼면이 툭 트여 햇살과 바람과 달빛이 드나드는 누마루는 차 한 잔의 여유 혹은 술 한 잔의 풍류를 즐길 수 있는 정자 역할을 한다. 월출산 위로 보름달이 뜨는 밤 누마루에 나와 앉으면 ‘달빛이 도장처럼 찍히는 집’이라는 이름처럼 안마당이 달빛으로 환하다.
집주인이 꼽는 최고의 달빛 풍경은 월인당이 아니라 마을 끝에 있는 원풍정(願豊亭)에서 바라보는 장면이다. 월출산 위로 둥실 솟아오른 달이 저수지에 교교한 빛을 풀어놓는 장면이 기가 막히게 아름답다는 것이다. 원풍정 기둥에는 이른바 ‘원풍정 12경’을 적은 12개의 편액이 걸려 있다. 지남들녘에 내리는 밤비(指南夜雨), 구림마을의 아침밥 짓는 연기(鳩林朝烟), 도갑사에서 들려오는 석양의 종소리(岬寺暮鍾) 등 ‘원풍정에서 내다보이는 12경’은 마을 벽에 시와 그림으로도 풀어 놓았다. 월인당에 묵는다면 꼭 마을 산책을 해보아야 하는 이유다. 10월 초 방문했을 때 모정마을은 민박을 겸한 한옥을 짓는 프로젝트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11월 말이면 15채의 새로운 한옥이 모습을 드러낼 예정이라고 한다.
영암도기박물관도 빼놓을 수 없다. 통일신라시대에 한반도 최초로 유약을 발라 구운 ‘시유도기’를 생산한 곳이 바로 구림이었다. 폐교가 된 구림중학교 자리에 2008년 4월 도기박물관이 신축 개관했다.
왕인박사유적지는 구림마을 동쪽 5분 거리에 위치한다. 일본에 한자와 유교를 전해 아스카 문화를 싹틔운 것으로 알려진 왕인박사의 자취를 사당과 전시관, 탄생지, 석상 등으로 복원해 놓았다. 구림마을에는 왕인박사가 일본으로 건너간 상대포구의 흔적이 남아 있는데, 당시 상대포구는 큰 나루터로 해상교류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고 한다.
영암을 여행하면서 낙지요리를 맛보지 않으면 서운하다. 2번 국도변에 위치한 독천마을엔 영산강 하굿둑이 완공되기 전까지만 해도 갯벌이 있었다. 지금은 어디에서도 그 흔적을 찾을 수 없지만, 30여 개의 낙지요리전문점만은 여전히 명성을 이어오고 있다. 갈낙탕, 연포탕, 낙지초무침, 낙지구이 등 다양한 낙지요리를 맛볼 수 있는데, 그 중 전라도 한우와 뻘낙지를 말갛고 시원하게 끓여낸 갈낙탕이 독천마을 진미 중의 진미로 대접받는다. 4, 9로 끝나는 날에는 독천5일장이 서니 여행일자가 맞는다면 구경해 보는 것도 재미있다. 한석봉의 어머니가 떡 장사를 한 곳이 이곳 독천시장이라는 설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