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해부학] 영화 '핑크'가 말하는 삶이란…

입력 2011-10-20 08:12 수정 2011-10-20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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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핑크’는 삶의 밝은 면보다는 어둡고 암울한 이면에 고개를 돌린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아픔과 상실 그리고 상처로 가득한 곳인 듯 내일에 대한 희망을 제시하지 않는다. 어딘지 달콤하고 말랑한 느낌으로 다가온 ‘핑크’는 어느새 보는 이들의 기억 속에 기억하기 싫은 과거를 복기시키는 촉매제로 변모한다. 하지만 연출을 맡은 전수일 감독은 ‘핑크’ 속 두 여자의 만남과 삶 그리고 뒤틀려 버린 모든 것을 치유하는 또 다른 공간을 ‘핑크’라 이름 붙이며 역설적으로 살맛나지 않는 세상 속의 희망을 노래한다.

‘핑크’는 ‘영도다리’ ‘검은땅의 소녀와’ 그리고 배우 최민식의 출연으로 화제를 모은 ‘히말라야, 바람이 머무는 곳’을 연출한 한국의 ‘시네아스트’ 전수일 감독의 신작이다.

영화의 주된 공간은 무너져 가는 한 바닷가 항구 도시와 그곳에 자리 잡은 선술집. 이름도 간판도 없는 그곳은 영화 속 주인공인 두 여자의 자기치유와 삶의 끈을 부여잡기 위해 존재하는 무대다. 그 무대에 선 두 여자는 옥련(서갑숙)과 수진(이승연). 옥련은 정신지체를 앓는 아들과 함께 살아가며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사투를 벌인다. 또 다른 여자 수진은 아버지의 성폭행을 피해 옥련에게 몸을 의탁한다.

영화는 각기 다른 두 여자의 상처를 얘기하지만 구체적 설명은 생략했다. 그 상처에 대한 관객들의 공감과 이해를 강요하는 것이 아닌 단지 관찰자로서 만의 역할을 주문한다. 때문에 대부분의 화면이 롱테이크와 핸드헬드(카메라 들고 찍기) 촬영으로 이뤄졌다. 화면의 미세한 떨림 자체가 관객들의 호흡과 일치하며 이 같은 느낌을 더한다.

그렇다고 단순히 건조함만으로 일관하진 않는다. 이따금씩 인물들이 주고받는 짧은 대사 속에서 ‘핑크’가 그리는 세상과 그 세상 속에 사는 것이 얼마나 고단한 것인지를 설명한다.

근친 성폭행의 피해망상에 시달리던 수진이 알 수 없는 육체적 관계로 이어진 옥련 모자(母子)를 바라보며 자신도 육체적 관계로 그 상처를 씻으려 하거나, 옥련이되기 위해 자신을 버리려 하는 행동 따위가 그 고단함의 표현일 것이다.

‘핑크’는 전체적 스토리텔링 구조보단 인물간의 감정 변화와 쓰러져 가는 한 항구도시의 모습, 그리고 각 인물들의 심리 변화를 그리며 관객들의 느낌과 생각을 흔든다. 때문에 심정적으로 다소 불편하며 힘든 작품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매 장면의 화면 구도와 풍광은 한 폭의 그림이라 불러도 손색없을 정도로 뛰어난 시각적 완성도를 자랑한다. 전수일 감독의 작가주의적 손때를 충분히 느낄 수 있다.

11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한 서갑숙과 신예 이승연 및 연극배우 출신 정재진의 전라 노출과 정사신은 충격적으로 다가오지만 결코 부자연스럽지 않다. 배우 스스로나 관객 모두에게 과잉 감정을 유발시킬 수 있는 캐릭터를 탁월한 해석력으로 소화하며 절제의 미학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기존 코믹한 이미지의 이원종도 ‘핑크’에서 만큼은 세밀한 내면 연기로 숨은 내공을 선보인다. 영화 음악 감독으로 참여한 강산에의 출연도 볼거리 가운데 하나.

세상을 살아가면 사람들은 여러 가지 색깔의 삶을 살게 된다. 때론 정열적인 붉은색부터 칠 흙 같은 검정색까지. 하지만 누구나 처음부터 꿈꾸는 색은 화사한 봄날의 그것을 연상시키는 ‘핑크’가 아닐까. 영화 중반 옥련은 말한다. “그땐 인생이 핑크빛이길 바랐었지.”

누구에게나 빛바랜 삶의 고단함이 있다. 그들 모두가 그 고단함 속에 머물러 있기도, 또 그 고단함에 길들여 진채 그저 살아가는. 영화 ‘핑크’는 그런 삶을 얘기하고 또 그린다. 개봉은 오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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