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가 저탄소 녹색성장 정책에 따라 야심차게 추진한 녹색금융이 2년이 넘어서고 있지만 ‘구호’에 그치고 있다. 특히 녹색금융의 주체라고 할 수 있는 은행에서 조차 1년째 새로운 상품개발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유명무실화된지 오래다.
◇‘개점휴업’ 중인 녹색금융상품= 12일 은행권에 따르면 국내 은행들이 출시한 녹색금융상품의 경우 맥을 못 추고 있는 실정이다. 시장수요가 적고 녹색산업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은행들의 녹색금융 의지가 꺾인 탓이다.
실제로 지난 8일 신한은행이 출시한 ‘신녹색기업대출’을 빼면 최근 1년 내 녹색금융상품을 신규 개발·출시한 시중은행은 전무한 실정이다. 신한은행의 ‘신녹색기업대출’도 기존의 ‘녹색성장대출’을 리뉴얼한 것인 만큼 사실상 신규 상품은 없는 셈이다.
그나마 나온 상품도 판매실적이 부진하다. 우리은행의 ‘저탄소 녹색통장’은 2008년 8월 출시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이 직접 영업점을 방문해 1호 고객으로 가입하는 등 대대적인 홍보를 펼쳤다. 하지만 올해 7월말 기준 개설 좌수와 취급액은 각각 13만5490좌, 2231억원으로 3년간의 판매실적치곤 초라하기 그지없다.
신한은행의 녹색성장대출은 2009년 10월에 출시됐으나 7월말 기준으로 574억원 정도다.
보험업계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상품 출시 당시 업계 안팎의 주목을 받았던 자전거보험은 수요가 급격히 줄어 현재 지방자치단체에 단체보험 상품으로 판매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사실상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상품의 실효성보다는 정부의 녹색금융정책에 부응키 위해 개발된 근본적 한계가 여실히 드러난 것이다.
이와 함께 금융회사의 녹색산업 자금지원도 유명무실한 상태다. 금융당국이 지난해부터 녹색예금·펀드 등에 대해 세제혜택을 주고 녹색산업에 지원토록했지만 지난해 한해동안 녹색예금·펀드·채권을 통털어 자금지원 실적은 제로다.
◇의욕만 앞선 탁상행정= 녹색금융을 시작한지 최소 2년 이상이 흘렀지만 은행들이 정착하지 못하는 것은 무엇일까. 은행의 실무책임자들은 정부의 탁상행정을 꼽는다. 한 시중은행 담당 부장은 “의욕이 앞서 실정을 고려하지 않고 외국사례를 끌어온 대표적인 탁상행정”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은행들은 현재와 같은 법과 제도 하에서는 녹색예금을 출시하기가 불가능하다며 억울해 했다. 관련 법령에 따르면 은행들은 비과세로 끌어모은 녹색예금의 60%를 녹색산업에 투자해야 한다. 녹색산업으로 분류되는 투자대상은 녹색인증제도에 따라 녹색사업인증이나 녹색전문기업으로 인증받은 곳이다. 그러나 올해 6월말 현재 녹색산업 진출 기업 가운데 녹색인증 업체는 61개, 11.6%에 불과하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이 상품을 내더라도 대출수요가 따라줘야 하지만 현실에선 그렇지 않았다”며 “무작정 상품을 낼 수도 없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금융권 일각에선 녹색시장이 충분히 형성되기 전에 무리하게 녹색금융을 추진할 경우 부작용이 따를 수 있다고 우려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시장이 형성되기 전 성과를 내야한다는 조급증을 경계해야 한다”며 “범정부차원의 섣부른 지원책은 과거 IT버블처럼 녹색버블를 초래할 수 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민간 금융회사들의 적극적인 역할을 주문하는 목소리도 있다. 구정한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시스템을 갖춰도 금융회사들의 의지가 없다면 녹색금융이 활성화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