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품 구매 불편 해소를 위해 의료계와 약사계, 소비자단체가 머리를 맞대고 의약품 분류체계 개편과 재분류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에 들어갔으나 예상대로 직역단체 간 이견 표출로 큰 진전을 보지 못했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박카스와 까스명수 등 중추신경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일반의약품 44개 품목을 의약외품으로 전환하기로 하고 이를 15일 오후 열린 중앙약사심의위원회 의약품분류소위원회 첫 회의에 보고했다.
이에 따라 이르면 8월부터는 이들 품목이 슈퍼마켓이나 편의점에서 판매될 전망이다.
그러나 약사계와 의료계가 첫날부터 안건의 우선순위를 놓고 신경전을 펼치면서 3시간에 걸친 장시간의 회의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인 실행방안을 논의하지는 못했다.
2000년 의약분업 이후 11년 만에 처음으로 열리는 이번 소위원회는 현행 의약품 분류체계를 개편하거나 재분류해 국민의 불편을 해소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특히 전문의약품과 일반의약품으로 양분된 현재의 의약품 분류체계에 약국이 아닌 슈퍼에서 판매가 가능한 '약국외 판매 의약품' 유형을 추가하는 방안이 안건으로 상정됐다.
보건복지부가 위원회 논의와 공청회를 통해 올해 정기국회에 약사법 개정안을 제출, 국민 불편을 해소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만큼 어떤 결과가 나올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또 의사의 처방이 필요한 전문의약품과 처방 없이 약사가 판매할 수 있는 일반의약품 목록도 재정비한다.
이 안건과 관련해 복지부는 의료계와 약사계, 소비자단체에 재분류가 필요한 일반의약품과 전문의약품 목록 제출을 요구하고, 외국 사례와 의약품안전 정보자료 등을 분석해 품목별 안건을 다시 상정할 방침이다.
그러나 의약품 분류체계 개편과 재분류는 의료계와 약사계의 이익이 걸린 문제여서 순조로운 논의 진행을 장담할 수 없다.
실제로 이날 첫 회의에서 의료계와 약사계 대표들은 전향적인 자세로 회의에 임한 만큼 좋은 합의안이 도출되기를 바란다면서도 사사건건 대립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회의 참석자가 전했다.
그럼에도 복지부는 지속적으로 회의를 열어 가능한 한 이른 시일 안에 가시적인 성과를 낸다는 계획이다.
소위원회 개최 일정은 정례화하지 않은 채 차기 회의 상정안건이 무엇인지를 고려해 그때그때 결정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이날 복지부는 일반의약품 가운데 약사법 개정 없이도 동네슈퍼나 편의점에서 살 수 있는 의약외품으로 전환을 추진한다는 계획을 보고했다.
복지부가 보고한 의약외품 전환 품목은 까스명수 등 액상소화제, 미야리산 등 장기능 개선 정장제, 안티푸라민 등 외용제, 박카스 등 자양강장 드링크 등 4가지 종류 44개 품목이다.
의약외품으로 전환하는 것은 위원회 심의·의결 사항이 아닌 만큼 이달 말 고시개정안을 마련하고 입법예고와 장관 고시를 거쳐 이르면 8월 시행에 옮긴다는 게 복지부의 방침이다.
복지부는 오는 21일 오후 4시 열리는 다음 회의에서 의약품 재분류 안건과 약국외 판매 의약품 신설 안건에 대해 복지부 자료를 보완해 재논의할 계획이다. 또 의약외품 전환에 대해서도 위원들의 의견을 받기로 했다.
그러나 이날 회의에서는 정작 국민의 관심이 높은 '약국외 판매 의약품' 신설을 포함한 2가지 안건에 대해서도 안건만 상정됐을 뿐 논의가 전혀 진척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의료계와 약사계는 특히 안건 상정의 우선순위를 놓고도 이견을 보이면서 대립했다.
아울러 의약외품으로 전환하는 44개 품목 중 절반인 22개 품목이 생산실적이 없는 품목이어서 국민의 체감도가 떨어지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복지부 이동욱 보건의료정책관은 의약외품 전환 품목 선정기준에 대해 "우리 사회에서 의약외품 전환을 통해 약국외 판매를 했으면 좋겠다고 얘기된 일반약 품목을 선정했다"며 "일본의 의약외품과 비교하고 장기복용해도 부작용이 미미한 품목으로 선정했다"고 설명했다.
중앙약심 조재국 위원장은 의약품 재분류에 대해 "시민단체 대표 위원에게 환자나 가족이 의약품 재분류에 대해 제시한 의견이 있는지 검토해서 별도 의견을 제출해달라고 부탁했다"며 차기 회의에서 구체적인 논의가 진행될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의료계 4명, 약사계 4명, 소비자단체 4명 등 총 12명의 위원으로 구성된 약심은 이날 위원 전원이 참석한 가운데 보건사회연구원 조재국 박사를 위원장으로 선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