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4대 정유사의 원적지 담합행위에 부과한 과징금은 4348억원으로 기존 예상한 사상 최대치는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본지 2011년 3월30일 공정위 “정유사 과징금 LPG사건 넘지 않을 것”기사 참조)
공정위는 26일 SK,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 S-OIL 정유 4사가 주유소 확보경쟁을 제한하기로 담합한 행위에 대해 과징금 4348억원을 부과하고 담합에 적극 가담한 SK,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 3개사는 검찰에 고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업체별 과징금 액수는 각각 △SK 1379억7500만원 △GS칼텍스 1772억4600만원 △현대오일뱅크 744억1700만원 △S-OIL 452억4900만원이다.
이번에 부과된 과징금은 공정위 사상 두 번째로 높다. 이에 따라 과징금 순위 1~2위는 모두 정유업체가 차지했다. 앞서 공정위가 부과한 역대 사상 최대 과징금은 6689억원으로 SK가스, E1, SK에너지, GS칼텍스,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가 2003년부터 2009년까지 액화석유가스(LPG) 공급 가격을 담합한 건이다.
하지만 GS칼텍스가 리니언시(자신신고)를 한 것으로 알려져 최종적으로 납부한 액수는 현 금액보다 적을 것으로 보인다. 공정위는 법에 따라 자진신고한 업체의 경우 과징금을 최대 100%까지 면제해주고 있다. 공정위는 자신신고 업체가 얼마나 면제 받을지에 대해 확인해 줄 수 없다는 방침이다.
◇정유소 담합 배경=공정위에 따르면 1990년대 후반 이후 정유사들의 정제능력 향상과 수요 정체, 석유수입사의 시장진입, 2001년 복수상표표시제 도입 등으로 석유시장 경제환경이 급변했다. 정유소는 주유소 확보경쟁 시 초래될 손실을 우려했다. 이에 따라 현 시장 점유율을 유지하는 선에서 주유소 확보경쟁을 최소화하기 위해 ‘원적관리 담합’을 실행하게 됐다는 것이 공정위의 설명이다.
원적관리 담합이란 정유사끼리 암묵적으로 상권을 나눠 상대 주유소 영역에 자사 주유소를 내지 않는 행위를 말한다.
이 같은 정유사의 원적지 관리는 가격을 직접적으로 담합한 것은 아니지만 공정거래법상 거래 상대방을 제한함으로써 경쟁을 저하시키고 결국 공급가격 인하를 억제하여 부당한 담합에 해당한다는 게 공정위의 설명이다.
◇어떻게 담합했나=공정위에 따르면 이들 업체들은 원적관리를 통한 주유소 확보경쟁을 제한하기로 합의한 후 실행에 옮겼다. 지난 2000년 3월 정유 4사 소매영업 팀장들은 석유제품 유통질서 확립 대책반 모임에서 시장점유율 유지를 위해 ‘원적관리 원칙’에 따라 원적사의 기득권을 인정하고 타사 원적 주유소 확보 경쟁을 제한하기로 합의했다.
아울러 정유사와 계약관계를 종료한 무폴주유소(특정 정유사 이름을 달지 않은 주유소)에 대해서도 기득권을 인정하여 통상 3년 간은 타사 상표로 변경을 제한했다.
또 지난 2001년 9월 `복수상표 표시제도'가 도입돼 주유소 유치경쟁이 촉발될 위험이 발생하자 SK, GS, 현대오일뱅크는 복수상표 신청을 하는 계열주유소에 대해선 정유사가 주유소에 부착한 상표를 철거하는 방식으로 이 제도의 정착을 방해하기도 했다고 공정위는 전했다.
공정위는 또 정유사의 담합이 깨진 것을 확인하지 못했기 때문에 합의가 최초 이뤄진 2000년부터 지금까지로 담합기간으로 판단했다.
◇담합이 초래한 결과 및 제재 의의=공정위는 정유사의 담합은 석유제품 가격상승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판단이다. 공정위는 주유소의 거래처 이전이 제한돼 정유사들의 기존 주유소 변경이 적었으며 폴 점유율이 10년 이상 비슷한 비율로 유지됐다고 설명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정유사별 2000년과 2010년까지 10년 간 시장 점유율 변화는 △SK 36.0%→35.3% △GS 26.5%→26.8% △현대오일뱅크 20.9%→18.7% △S-Oil 13.2%→14.7% 등으로 변동이 없었다.
이어 공정위는 “그간 무성하던 정유업계의 원적 관리 영업관행 배후에 일종의 불가침 협정과 같은 합의가 있었음을 입증함으로써 담합행위를 적발한 사례”라고 평가했다.
공정위는 이번 제재로 “정유사들의 주유소 확보 경쟁이 활발히 이뤄질 경우 정유사의 주유소에 대한 공급가격 인하로 최종 소비자 가격 하락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해당 정유사들은 “담합을 하지 않았다”며 공정위의 이 같은 방침에 대해 강력 반발하고 있다. 공정위가 특정 업체의 전직 영업사원의 일방적 진술만을 근거로 강력한 제재를 결정했다고 보고 일부 정유사는 법적대응도 불가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