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만주학' 연구해야 하는 이유

입력 2011-04-27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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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철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장

올해는 중국의 신해(辛亥)혁명 백주년이 되는 해다. 다른 말로 말하면 만주학 연구가 시작된 지 백년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중국의 마지막 봉건왕조 청나라가 멸망하면서 공식 언어였던 만주어도 쓰이지 않게 되었고 만주족도 급격히 한화되어 갔다.

만주는 역사적으로나 언어적으로 한국과 밀접한 관계에 있다. 조선시대에는 만주족과의 소통을 위해 사역원에서 만주어 교과서를 만들었는데 이를 청학서라고 한다. 어학 분야에서는 주로 이들을 대상으로 연구한다. 만주어 교재 ’청어노걸대(淸語老乞大)’, 만주어 소설 ’삼국지’에서 추려낸 ’삼역총해(三譯總解)’, 어휘 분류사전 ’동문유해(同文類解)’, ’한청문감(漢淸文鑑)’ 등이 만주어를 배우기 위한 중요한 자료가 된다.

또 하나 중요한 대상은 조선과 청나라 관계를 고찰하는 역사 분야다. ’만주실록’과 황실 보관문서인 ’주접(奏摺)’ 등의 방대한 자료가 있다. 최근에는 조선과 청나라의 관계와 국경문제를 고찰할 수 있는 ’훈춘부도통아문당(琿春副都統衙門)’ 등이 주목받고 있다.

지금까지 한자로 된 문헌에만 의지하던 역사에서 만주어 문헌은 새로운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한국과 중국 사이에 수백년 동안 오가던 연행사절의 생생한 기록인 ’연행록(燕行錄)’은 귀중한 자료로 부각되고 있다.

만주학의 범위를 우리나라와의 관계에만 주목해 역사와 어학으로만 국한할 수는 없다. 민족학과 문학 및 민속학에 이르는 폭넓은 연구범위를 대상으로 삼을 수 있으며 이를 통해 보다 온전한 만주학을 이룰 수 있고 새 연구과제를 찾을 수도 있다.

청대 문학 중에는 만주족 문인이나 황실과 밀접한 한족출신의 귀족에 의한 문학창작이 한문으로 쓰여진 작품이 다수 있고 청 황실에서 적극적으로 추진한 소설 번역이 있다.

그리하여 오늘날까지도 ’삼국지’와 ’금병매’ 등의 사대기서와 ’요재지이’ 등의 문언소설이 전체 혹은 일부 남아 전하고 있다. ’삼국지’는 우리나라에서 ’삼역총해’로 만들어진 적이 있지만 특히 ’금병매’의 번역이 만주어로 존재한다는 사실은 특기할 만한 일이다. 기록에 의하면 ’홍루몽’의 번역도 있었다고 전하니 조선후기에 나온 방대한 낙선재본 번역소설과도 다양한 방면에서 비교연구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에서는 현재 만주족의 일족인 신쟝(新疆)지역 시버(錫伯)족의 후예를 찾아 만주어 전문가로 활용하고 있다. 베이징과 타이베이의 고궁박물원, 중국제일역사당안관 등에 소장된 방대한 만주어 문헌의 정리와 연구에 중국의 전문가들은 의욕적으로 몰두하고 있다. 사실 한족에게는 만주어 문헌의 해독이 상당히 난해할 수밖에 없으나 오히려 언어적 유사성에 의해 한국인에게는 비교적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이 만주어다.

한국에서 만주학의 연구는 이제 필수적인 과제다.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은 수년전부터 이에 대한 준비로 만주어 강좌를 개설하고 초급과정에서 ’청어노걸대’ 등을 공부하고 있고 전문가 과정에서는 역사자료의 번역과 주석작업을 진행 중이다. 또 국내 전문가는 물론 중국과 미국의 만주학 전문가도 불러 초청강연을 통해 국제적인 연구경향을 파악하고 이달에는 중국과 대만, 일본, 독일 등으로부터 국제적 명성의 전문학자를 불러 국제회의를 개최했다.

아득히 느껴지기만 했던 만주학, 알고보면 지극히 가까이 있었던 만주학이 이제는 우리 한국학의 외연에 연장선상에 있음을 깨닫게 된다. 만주학 연구는 한국학의 세계화에 피할 수 없는 새로운 연구대상이라는 점도 분명해졌다. 중국과 일본 연구에만 집중하던 서양학자들은 한국의 언어와 문화를 접하면서 비로소 동아시아 문화의 전반적 흐름과 맥락이 잡혀진다고 한다. 동북아시아에서 만주에 대한 이해는 한국과 중국, 한국과 아시아 제민족 사이의 언어와 문화의 상관관계를 좀더 명쾌하고 세심하게 이해하기 위한 또 하나의 연결고리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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