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보면 내공(內功)이 보인다. 오직 한 우물만 판 강성창 도부인터내셔널 대표이사. 그는 골프클럽에 매달린 세월이 28년이다. 2011년을 변화의 기회를 가지려고 회사명을 반도골프에서 도부인터내셔널로 바꿨다. 도부는 ‘날다(飛)’라는 뜻의 일본어.
그는 고려대에서 화공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 LG그룹에 입사했다. 이것이 그룹계열인 반도스포츠에서 골프클럽과 인연이 닿았다. 반도스포츠가 지난 1982년 일본의 다이와 골프와 클럽계약을 맺었다. 1년 뒤 다이와 골프에서 클럽조립 기술을 배웠다. 이어 반도다이와 클럽이 출시되면서 제작 및 영업 관리를 맡았다.
“국내는 골프관련사업에 대해 황무지였습니다. 골프장이 모두 합쳐 30개가 안 됐고 골프인구도 미미했죠. 이런 상황에서 클럽시장은 대기업에서 하기에는 규모가 너무 작았습니다.”
그럼에도 반도는 86년 최상호와 스폰서 계약을 한다. 그리고 3년 뒤 반도클럽 자체 제작팀을 구성한다. 이 때 강 대표는 일본 명품 골프클럽 브랜드 마루망의 협력업체인 클럽제작소 우에키의 클럽 장인을 찾아가 제자가 되었다.
“처음에 만나주지도 않았습니다. 조르고 졸라 수제자가 되었죠. 날밤을 지샌 적이 한,두번이 아닙니다. 일본어 배우랴, 기술 배우랴 눈코 뜰새가 없었죠. 그런데 체질이 맞았는지 카본헤드 제작기술을 익혔습니다.”
2년 뒤 자체 모델을 선보였다. 90년대 잘 나가던 프로들은 다 아는 ‘체이서 프로’와 ‘에어로다트’ 아이언이다. 최상호, 박연태, 이해우, 권오철 등 다수의 프로 들이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2년 뒤 반도스포츠는 LG상사와 합병했다. 그러면서 골프를 접었다. 이것이 기회인가. 회사에 사표를 내고 강성창 대표는 골프 부분만 독립시켰다. 클럽인기에 힘입어 최경주와도 용품사용계약을 했다. 특히 최상호가 체이서 프로 클럽으로 우승하면서 반도골프는 입지 강화에 성공했다.
그런데 일 터졌다.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 수입클럽의 특소세가 94년 폐지된 것이다. 미국과 일본의 유수의 용품사들이 톱 브랜드를 앞세워 한국골프용품시장을 점령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강 대표는 비-렉스 시리즈를 선보이며 경쟁력을 높였고 페어웨이 우드는 공전의 히트작이 됐다. 미국까지 수출했다.
그러나 이도 잠시뿐. 가격과 물량공세에 밀리면서 국산 클럽메이커들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반도골프도 마찬가지였다. 이후 내리막 길을 걷게 된 것이다.
체이서 맥스와 테크만 등 클럽으로 2003년까지 유지했던 매출액이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우리의 기술과 자본력만으로 국산을 키우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 고유의 브랜드를 키우기 위해 일본 클럽 디자이너와 전략적 제휴를 했습니다. 그리고 BT-7외에 사카모토, 이루카 클럽 등 다양한 라인을 갖춘 것입니다.”
보다 나은 제품개발을 위해 그는 2008년 일본으로 건너가 한국인 처음으로 일본골프용품협회로부터 피팅 및 판매기술자 라이선스를 취득하기도 했다.
제2의 도약을 선언한 강성창 대표. 그는 과연 옛 반도골프의 명성을 되찾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