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금융위기 이전까지 글로벌금융 질서를 주도해 온 선진국 위주의 지배구조에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볼커롤 적용에 따른 미국 금융산업의 규제 강화를 계기로 글로벌 금융시장의 주도권이 선진국 중심에서 중국 등 아시아국가로 점차 이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글로벌 금융질서의 재편과정을 한국 금융이 도약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진동수 금융위원장은“신흥국의 발언권이 점점 강화되는 상황에서 우리도 한국금융의 글로벌 위상과 경쟁력을 한층 높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았다”며“선제적으로 금융선진화 정책을 추진해 도약의 기회로 십분 활용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글로벌 금융시장 아시아 중심으로 재편=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리먼사태로 세계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은 아시아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세계 경제의‘엔진’인 중국이 대규모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등 대대적인 경기부양책을 펼친데 따른 효과가 나타나고 있고 아시아 각국 금융기관도 월가에 비해 튼튼한 면모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또 최근 미국 정부가 대공황 이후 가장 강력한 개혁법안인 금융규제법(볼커룰)을 시행할 계획이여서 글로벌 금융시장이 빠르게 재편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크리스토퍼 콕스 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은 최근 한 강연에서“미국 금융회사가 금융개혁법안에 따라 투자를 제한받는 동안 미국 이외의 금융회사들은 새로운 기회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며“(아시아국가들은) 글로벌 금융시장의 중심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라고 강조했다.
여기에다 그리스 재정위기를 중심으로 유럽 금융시장이 흔들린 점도 글로벌 금융시장 재편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그리스는 포르투갈의 은행에서 대출을 받고 있었으며 포르투갈은 스페인에서 자금을 조달했다. 또 스페인은 독일은행과 프랑스 은행에 채무를 지고 있는 상황이었던 만큼 결국 그리스의 부도는 독일과 프랑스 은행의 부도로 이어져 유럽 금융시스템의 붕괴를 불러 올 수 밖에 없었다.
삼성경제연구소는‘글로벌 금융시장의 경쟁구도 변화’보고서에서 금융위기로 인해 투자자산 손실, 디레버리징 등으로 글로벌 금융시장을 주도해 온 선진국 은행의 손실이 급증했다.
미국 및 유럽 은행은 아직 상당한 규모의 부실자산을 보유하고 있으며 추가 부실 우려도 상존하고 있다는 분석했다.
박현수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글로벌 금융산업의 경쟁구도 변화는 중장기적으로 세계경제에도 근본적인 변화를 초래할 소지가 있다”며“상대적으로 취약한 금융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는 우리나라의 입장에서는 글로벌 금융산업의 경쟁구도 변화를 적절히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중국을 비롯한 이사아권 국가들은 축적된 자본과 고성장 등을 바탕으로 글로벌 금융시장의 주요한 플레이어로 부상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선진국 대형 금융기관과 아시아권 국가의 금융기관의 격차는 축소될 것으로 내다봤다.
따라서 한국·일본·중국 등 아시아국가를 중심으로 글로벌 금융시장의 주도권 확보를 위해 협업체제를 구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금융위기가 한발짝 비켜간 아시아에서 선진국과 개도국을 대표하는 국가들이 힘을 합칠 경우 글로벌 금융시장을 주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한수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글로벌 금융시장에서 보다 효율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한국, 중국, 일본 3국간) 지역적인 협력을 통해 글로벌 금융시장에서의 역할을 보완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또 한·중·일 3국간 금융통합을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유럽이나 미국 등 선진시장은 지역간 협조를 통해 자국의 이익을 제고하면서 글로벌 시장의 주도권을 유지하고 있는 만큼, 아시아지역 역시 이같은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 연구위원은“향후 금융시장의 활성화, 이를 통한 효율적인 리스크 분산의 효과, 역내 자금의 역내 투자로 유도 등을 위해서는 주식시장 및 모든 자본시장에서의 (한·중·일) 협력이 동시에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 한국금융 도약 적기 = 하지만 한국금융시장의 현실은 암담하다. 세계 1000대 은행에 선정된 은행이 10개에 불과하며 세계 50대 은행은 전무한 상황이다. 한국의 경제 위상에 비해 미흡한 것이다.
따라서 글로벌 금융시장이 아시아 중심으로 재편되는 만큼 이를 한국금융산업의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핵심 제조업을 기반으로 금융 등 서비스업을 발전시켜 위기에 튼튼한 경제구조를 구축하는 한편 한국이 아시아에 영향을 확대하는‘기회’로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철저한 현지화 전략을 토대로 해외 진출을 적극 추진하고 해외 전문인력을 과감히 영입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또 금융위기 극복과정에서 드러난 외환부문에서 구조적 취약성 및 주택담보대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문제 등에 대해서도 보완작업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와 함께 국내부문에 지나치게 편중된 사업 포트폴리오의 글로벌화를 통해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추구하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박 수석연구원은 “기회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할 경우 지역 금융기관 경쟁에서도 탈락하면서 금융산업의 글로벌 경쟁에서 도태될 위험에 처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의 의장국이란 위치도 잘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금융위기를 극복한 후 세계경제질서 재편의 전환기에 있는 만큼 한국의 위상, 금융산업의 위상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권 관계자는“한국은 오는 11월 서울에서 열릴 G20 정상회의에서 구 질서와 신 질서간 대립체제 속에서 조정자라는 막중한 책임을 갖고 있다”고 말한 뒤“이번 기회에 저평가 됐던 국내 금융회사의 경쟁력이 부각되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중국 등 아시아 국가들이 지난 금융위기에 적절히 대처하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목소리를 높여가고 있지만 여전히 선진국 경제에 대한 취약성, 리스크 분산 관리 등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윌리엄 랑 필라델피아 연방준비은행 부총재는 올해 초 열린 서울국제금융포럼에 참석해 “(한국의 경우) 위기 이후 글로벌 시대에 새로운 금융질서를 위해 리스크 관리에 중점을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즉 한국이 금융강국이 되려면 현 상황에서 투명성, 효율적인 감독 등을 통해 리스크 관리 선진화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글로벌 금융시장이 재편되는 현 시점은 한국 금융산업의 기회”라며 “일본·중국이 대형 금융기관을 중심으로 아시아 금융시장에서 주도권을 적극적으로 확대하고 있는 만큼 우리나라도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영향력을 강화할 수 있는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정부의 대외협력 강화 등 민·관 협력체제를 구축해 한국 금융산업의 발전을 꾀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용어설명
-볼커룰(Volcker Rule)
폴 볼커 미국 백안관 경제회복자문위원회 의장의 이름을 딴 이 규제안은 금융회사의 지나친 고위험 고수익 투자를 제안하고 과도한 대형화를 방지하자는 취지의 금융규제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