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중소기업들이 연말 돈가뭄에 시달리게 됐다. 국내 은행들이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가 가시기도 전에 돈 떼일 염려가 크다며 중소기업 대출 지원 규모를 줄여나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국내은행들이 최근 정치권의 압박으로 영업이익의 일정부분을 서민대출로 내놓기로 하면서 정작‘산업계의 서민’이라 할 수 있는 중소기업 대출에 대해선 리스크 관리를 이유로 신중한 태도를 보여‘이중적 잣대’를 적용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할 전망이다.
지난 7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16개 금융기관을 대상으로 실시한‘대출형태 서베이(조사)’결과, 4분기 은행들의 종합 대출태도지수는 6으로 전분기 11보다 5포인트 하락했다.
이 지수가 높을수록 은행들이 대출에 적극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대기업에 대한 대출태도지수는 4분기 3으로 전분기와 변동이 없는 반면 중소기업은 3분기 9에서 4분기 6으로 3포인트 떨어져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을 강화하려는 태도를 보였다.
은행권 관계자는 “부동산경기 부진, 기업구조조정 등으로 신용위험이 높아질 것으로 전망되면서 대출 규모를 줄이려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즉 은행들이 돈을 빌려줬다가 돌려받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선행적 조치로 대출 규모를 줄이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중소기업의 자금 압박이 연말로 갈수록 커질 것으로 보인다. 경기상승세로 인한 선행투자, 연말 상여금 등 자금수요는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대출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특히 국내은행들이 그동안 일부 자금을 풀었으나 중소기업에 실제로 흘러들어간 돈이 많지 않다는 점도 자금압박을 가중시킬 전망이다.
실제로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신건 민주당 의원이 금융감독원에 요구한 2005년 이후 은행권의 월별 중기 대출 자료에 따르면 은행권의 전체 여신에서의 중기대출 비중이 지난 6월말 45.5%로 리먼브러더스 부도로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었던 2008년 9월(46.2%) 당시보다 0.7%포인트 줄었다. 중기대출 비중이 가장 높았던 지난해 10월말(46.4%)와 비교해 봐도 1%포인트 가까이 낮은 수준이다.
월 평균 순증액으로 볼 때도 위기극복과정인 지난해 상반기 월평균 순증액은 2조7000억원이었던 데 반해 올해 1월부터 6월말까지 월평균 순증액은 4000억원에 불과했다.
은행권의 각종 상생협력 대출과 상생펀드도 소리만 요란했을뿐 중소기업 지원규모는 미미한 수준으로 나타났다. 신한은행은 지난해 5월부터 GS칼텍스·GM대우 등과 손잡고 ‘협력기업 상생보증대출’을 위해 7552억원에 이르는 자금을 조성했지만 협력중소기업에 실제로 지원된 금액은 10%가 채 안되는 707억원이었다.
우리은행도 2008년 이후 ‘대기업 협력기업 상생대출’을 위해 2060억원의 자금을 마련했지만 집행금액은 627억원에 그쳤다.
이와 함께 중소기업 지원을 위한 패스트트랙 제도가 연말 종료를 앞둔 상황에서 은행들이 대출 규모를 줄이는 것은 여전히 유동성 부족으로 어려움에 처해 있는 중소기업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행위라는 지적이다.
중소기업 관계자는 “서민들을 위한 대출을 늘린다고 말만 할 뿐 정작 필요한 중소기업들에겐 오히려 우산을 빼앗는 이중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며 “금융위기 여파가 가시지도 않은 상황에서 시중은행들이 중기 대출을 대폭 줄인 것은 이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또 “정부의 중소기업 지원 정책이 마무리되더라도 은행에서 지속적인 지원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밝혔다.